[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7년 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체조는 52년만의 첫 금메달을 따냈다. '도마의 신' 양학선이 자신의 이름을 딴 최고난도의 '양학선' 기술을 완벽하게 꽂아내며 체조인들의 숙원을 이뤘다.
선수의 걸출한 재능과 비범한 노력에 체조인들의 전략적 지원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당시 대한체조협회는 런던올림픽을 1년여 앞둔 2011년 고양에서 제1회 코리아컵 국제체조대회를 개최했다. 양학선은 이 안방 대회에서 난도 7.4점의 '양학선' 기술을 첫선 보였고, 보란듯이 성공시켰다. FIG가 난도 7.4점의 신기술을 인정, 공식 코드북에 등재시켰고, 양학선은 이 독보적인 기술에 힘입어 약관 스무 살에 올림픽을 제패했다.
2019년 6월 제주에서 제3회 코리아컵 국제체조대회, '17세 도마공주' 여서정이 7년 전 선배 양학선의 길을 이어받았다. 19일 제주한라체육관에서열린 도마 결선 1차시기, 난도 6.2점, '여서정' 신기술을 보란듯이 성공시켰다. '미국 여자체조 최강자' 시몬 바일스(미국)의 난도 6.4점 기술에 버금가는 초고난도 기술을 장착했다.
'여서정' 기술은 '도마 앞 짚고 공중에서 두 바퀴 비틀기'로 아버지인 '원조 도마의 신' 여홍철 경희대 교수의 '여2(도마 앞 짚고 두 바퀴 반 비틀어 내리기)'보다 반 바퀴(180도 회전)를 덜 도는 기술이다. 웬만한 근력과 하체의 힘 없이는 내로라 하는 남자선수들도 좀처럼 성공시키기 힘든 기술이다. 여서정은 실시(E) 점수에서 9.000점, 착지에서 왼발이 밀리며 0.1점 감점돼 15.100점의 고득점을 받아들었다. 1-2차 시기 평균 14.817점으로 난도 5.8점, 5.6점 기술을 시도한 '우즈베키스탄 레전드' 옥사나 추소비티나(44·14.550점)를 꺾고 우승했다.
여서정은 "순위와 상관 없이 준비했던 새로운 기술을 성공하고 싶었다. 뜻대로 잘 돼서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신기술 훈련 때 실수도 많았는데, 이렇게 성공하게 돼 기쁘다. 대회중 연습을 하고 경기를 하면서 컨디션과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다"며 성공 비결을 밝혔다. 이날 현장에선 대회 여자부 기술감독관(테크니컬 디렉터·TD)을 맡은 나제즈다 세일레 국제체조연맹(FIG) 1급 국제심판이 여서정의 기술 성공 과정을 직접 지켜본 후 기술 성공을 증명하는 영상을 FIG에 보냈다, 대한체조협회가 서류등록 절차를 마치면 FIG 기술위원회에서 여서정의 기술을 공인, FIG 채점 규정집에 '여서정' 기술을 등재하게 된다.
5초의 승부, 도마종목에서 흔히 '스타트 점수'라고 칭하는 난도 점수의 몫은 절대적이다. 특히 0.01점 차로 메달색이 갈리는 첨예한 올림픽 무대에서 경쟁자보다 0.2점을 앞선 채 출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도마 종목에서 32년만의 금메달을 목에 건 '여홍철 2세' 여서정의 신기술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이정식 여자체조 대표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서정이가 훈련을 굉장히 충실히 소화했다.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오직 훈련에서 나온다. 신기술 성공의 의미는 매우 크다"라며 애제자의 분투를 칭찬했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은 한 번의 기술 성공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체조에서 오늘 기술이 성공했다고 내일 기술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동안 신기술 숙련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마음을 다 잡았다.
한편 이날 양학선(27·수원시청) 역시 자신의 기술 양학선(도마 앞 짚고 공중에서 세 바퀴 비틀기, 일명 양1)'을 큰 실수 없이 소화하며 1-2차 시기 평균 14.975점으로 우승했다. 신형욱 남자체조대표팀 감독은 "올 들어 학선이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 반 바퀴를 더 돌아도 남을 정도"라며 웃었다. "대표팀 주장을 맡으면서 책임감도 더 강해지고, 기술 숙련도도 더 높아졌다. 도쿄올림픽에서 틀림없이 잘해낼 것"이라며 강한 믿음을 표했다. 더 높은 난도의 기술도 일찌감치 계발했지만 현재 기술만으로도 적수가 없다. 신 감독은 "'양학선' 기술과 '로페즈'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금메달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세계선수권,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없이 끝까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3년 전 리우올림픽에서 양학선의 부상 악재 속에 28년만의 노메달에 그친 한국 체조가 다시 비상을 꿈꾸고 있다. 양학선과 여서정,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보유한 '남녀 도마의 신'이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채 나란히 도쿄올림픽에 도전한다. 양학선과 여서정은 10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리는 세계체조선수권에서 도쿄올림픽 티켓 사냥에 나선다. 사상 첫 남녀체조 동반 금메달, 한국체조가 다시 행복한 꿈을 꾸게 됐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