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빈민 선교활동을 펼친 일본인 목사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 씨가 사진집 '유신의 추억'을 냈다.
지난 2013년 청계천변 빈민가를 주로 찍은 '노무라 리포트'에 이은 두번째 사진집이다.
제목만 보면 대도시 요소요소를 점령한 군인과 시위 진압 경찰이나 야당 인사, 대학생들이 탄압받는 현장과 같이 유신시대의 억압적인 정치, 사회 상황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970년대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한국 민중의 일상 위주다.
그러나 애써 말하지 않아도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이나 배경만으로도 그 시대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표지 사진을 비롯해 택시 안에서 찍은 사진이 많이 눈에 띈다. 사진촬영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유신기의 엄혹한 상황을 말해 주는 듯하다.
교문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너머 학교 건물의 이마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조국에 헌신하는 한국인'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경기도 성남의 판자로 만든 건물에는 '활민부국(活民富國)', 충청남도 부여의 둑방길 입간판에는 '중단하라 무력도발 3천만이 분노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곳곳에 구호가 넘쳐나는 시대였다.
평화시장 여공들의 작업장, 소달구지에 짐을 가득 싣고 가는 남자, 열차를 기다리는 간이역 대합실 승객, 담배 한대를 입에 문 군인들의 모습에서 문득문득 시대의 음울함이 느껴진다.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청계천과 중랑천변을 뒤덮은 판잣집들은 다른 세계의 일처럼 보일 법하다.
그러나 판자촌 골목 안에서 사탕을 입에 물고 카메라 앵글을 응시하는 아이, 줄에 묶여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듯한 강아지, 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머리에는 뭔가를 인 채 좁은 골목을 바삐 오가는 아주머니는 지금 서울 어딘가에서도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일제 식민통치의 죗값을 갚기 위해 한국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고(故) 제정구 전의원과 함께 청계천변 송정동에서 빈민을 위한 봉사활동에 힘썼던 저자는 처음 그 판자촌의 참혹한 모습에 그곳이 "신이 없는 생지옥"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들을 통해 풍부한 삶의 체험을 거쳐 그곳에도 예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 놓았다.
저자는 "한일 양국 국민이 서로 존경과 경애의 마음을 길러 밝은 동북아시아 건설의 꿈을 키워나가길 바라며 이 사진집이 그 일에 쓰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눈빛. 216쪽. 2만5천원.
cwhy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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