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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포커스]'리스펙' 입은 프로농구, 스토리에 품격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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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22일, 원주 DB와 부산 KT의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대결이 열린 원주종합체육관.

경기 시작 전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박순진 체력 코치의 은퇴식이었다. 박 코치는 프로농구 원년부터 20년 넘게 DB에만 몸담은 '원 클럽 스태프'다. 그는 나래를 시작으로 TG-동부 등 팀의 간판이 바뀌는 동안에도 줄곧 원주를 지켰다. DB의 희로애락을 함께한 인물이다.

DB는 그동안 팀과 함께 생활한 박 코치를 위해 은퇴식을 준비했다. 경기 전 헌정 영상을 통해 그동안의 땀과 눈물을 돌아봤다. 선수 시절 박 코치의 관리를 받았던 허 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도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신해용 단장을 비롯해 이상범 감독과 윤호영 등이 감사패와 꽃다발을 전달했다. 팬들은 DB를 위해 청춘을 바친 박 코치를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사실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에서 스태프 은퇴식은 무척이나 드물다. 스태프는 조력자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림자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다.

DB가 그 틀을 깼다. 이상범 감독은 "DB에서만 20년 넘게 청춘을 바친 인물이다. 이제 새 인생을 향해 걸어가는데 박수를 보내드려야 하는 게 맞다. 흔치 않은 은퇴식인 건 알지만, 이런 은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DB 관계자 역시 "스태프가 은퇴를 한다고 해서 행사를 진행한 적은 없다. 하지만 팀을 위해 청춘을 바친 분께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에서 정성껏 준비를 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허 재 전 감독께서도 영상 메시지 촬영에 흔쾌히 응해줬다"고 전했다.

이날 하프타임에 또 다른 은퇴식이 열렸다. '원주의 아이돌' 이광재(35)의 은퇴식이었다. 헌정 영상, 인터뷰 등 10분 남짓 진행된 은퇴식. 눈에 띄는 것은 마지막 기념 촬영 때였다. DB의 선수들은 물론이고 KT의 선수들도 다 함께 코트에 나와 사진을 찍었다. 이광재가 DB와 KT에서 뛰었다는 점에서 착안, 다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다.

선수 입장에서는 하프타임 때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집중력, 슛 감각, 몸 상태 등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정팀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홈팀은 물론이고 원정팀 선수들도 행사에 참여해 의미를 빛냈다. KT 구단 관계자는 "하프타임 행사는 부담스럽다. 하지만 KT에서도 뛰었던 선수의 은퇴식이었다. 선수들 모두가 과거를 추억하고, 선배의 앞날을 응원하는 게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모두가 함께한 은퇴식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 이변호 씨는 "팀에서 지도자와 선수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지원 스태프도 존중받는 '리스펙'의 자세다. 주연이 빛나기 위해서는 뒤에서 힘을 보태는 조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광재 선수 은퇴식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은 한 번 팀을 떠나면 '남'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제는 시간을 함께 보냈던 인물이라는 의미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프로농구가 출범한지 20년이 넘었다. 이제는 기록에 품격도 더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프로의 자격을 증명하는 방법은 하나였다. 오직 승리만이 그 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프로에 걸맞은 좋은 경기력은 필수다. 하지만 기록, 스토리를 쌓아가는 것도 프로의 역할이 됐다.

원주=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