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중국)=정재근 기자] 전쟁터같은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 모처럼 인간미가 넘쳐 흘렀다. 메달 색깔은 달랐지만 모두가 서로를 위로하고 축하해 준 가슴 찡한 시상식이었다.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 계주 시상식이 열렸다. 메달 세리머니가 아닌 올림픽 마스코트 빙둔둔을 수여하는 자리.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 2위 한국, 3위 중국의 선수들이 시상대에 함께 올랐다.
각자의 자리에서 사진촬영이 끝나고 선수들이 1등 단상으로 모였다. 13명이나 되는 선수가 모두 1등 단상에 올라갈 수 없자 몇몇 선수들이 앞에 나와 앉기 시작했다. 중국 장추통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고 이유빈도 앞으로 나왔다.
바로 그때 장추통이 반갑게 손을 내밀며 이유빈을 맞이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팔짱을 낀 장추통의 따뜻한 마음씨에 이유빈도 어깨를 토닥이며 흐뭇해했다. 장추통은 2003년생 18세로 중국팀의 막내다. 판커신과는 무려 10살 차이다.
장추통은 1000m 예선에서 이유빈과 같은 조에서 함께 뛰었다. 이유빈이 2위로 준준결선에 진출했고, 장추통은 3위로 들어왔지만 좋은 기록으로 와일드카드를 따냈다.
막내 장추통의 이런 행동에 다른 중국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기들로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인 듯 했다.
중국팀 막내이지만 이날 시상식에서 만큼은 장추통이 가장 어른스러웠다. 세 나라의 선수가 모인 자리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단체 셀카 사진을 제안한 것도 장추통이다.
판커신 등 나머지 중국 선수들과는 너무도 다른 장추통의 모습에 네덜란드 선수들도 모두 장추통을 껴안아주며 고마워했다.
시상식을 훈훈하게 했던 또 하나의 장면. 최민정과 수잔 슐팅의 포옹이다. 먼저 다가가 슐팅에게 손을 내민 건 최민정이다.
1000m 결승선에서 슐팅의 손에 잡혀 2위를 한 최민정으로서 진심어린 축하를 건네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 그럼에도 최민정은 새로운 챔피언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두 천재 스케이터의 뜨거운 포옹 덕분에 여자 3000m 계주 시상식이 더 빛났다.
편파판정으로 얼룩진 베이징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세계 최고 선수들의 멋진 모습은 전혀 얼룩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