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1077일만에 다시 만난 2만 3000명 야구팬들로 꽉찬 사직구장. 하지만 어느덧 리그 간판스타로 성장한 프로 4년차 에이스는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은 6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등판, 8이닝 무실점 완벽투로 5대0 팀 승리를 이끌었다.
'팀 타율 1위' 롯데 타선은 원태인 상대로 산발 6안타에 그쳤다. 경기 초반 선두타자 출루 때 점수를 내지 못하자, 5~8회에는 4이닝 연속 3자 범퇴의 굴욕도 당했다. 내로라 하는 거포들, 베테랑 대타, 젊은 패기 모두 원태인의 압도적 피칭 앞엔 무소용이었다.
타선에서도 젊은 사자들의 활약이 빛났다. 3년차 김지찬은 5타수 3안타 2타점 1득점, 이날의 선취점과 마지막 점수를 자신의 방망이로 만들어내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2년차 김현준도 3안타 1득점을 기록하며 김지찬의 뒤를 받쳤다.
이날 경기 전까지 원태인의 성적은 4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3.52. 지난 시즌 14승 투수의 위엄은 보이지 않았다.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도 한화 이글스전 1경기 뿐이었다.
경기 후 만난 원태인은 "요즘 풀릴듯 풀릴듯 잘 안풀렸는데, 오늘은 '맞더라도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존을 공략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기뻐했다.
8회까지 투구수는 104구. 생애 첫 완봉이 욕심나진 않았을까. 원태인은 "1회부터 계속 위기라 힘을 많이 썼다. 8회 끝나고 코치님하고 깔끔하게 그만 던지기로 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코스코스 꽉차게 던지려하지 말고 실투만 조심하자, 과감하게 승부하자는 생각으로 인했다. 볼카운트를 계속 유리하게 가져갔던게 타이밍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온 것 같다. 저번 경기(4월 3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도영 상대로 삼진 욕심 내다가 볼넷 주고 역전타 맞았다. 오늘은 삼진 대신 타자와의 승부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1회와 2회, 4회에는 선두 타자가 안타를 치고 나갔다. 원태인은 "요즘 우리 선발투수들 중에 황동재 빼곤 다들 1~2회에 실점하면서 경기를 어렵게 풀었다"면서 "초반에 절대 점수 주지 않겠다 마음을 다잡고 던졌다. 덕분에 후반에 좋은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이날 사직은 2019년 5월 25일 이후 1077일만에 2만 2290석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롯데 팬들이 많았지만, 3루 응원석을 가득 채운 삼성 팬들의 물결도 만만치 않았다.
원태인은 "부산 원정인데도 삼성 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셨다. 덕분에 롯데팬들 앞에서 주눅들지 않았다"고 했다.
'코로나 세대'인 원태인에겐 생경한 풍경. 하지만 원태인은 "몇만 관중 앞에서 내 플레이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하고 정말 큰 영광"이라며 "전 이미 타이브레이크라는 정말 큰 경기에서 던져봤다. 선수는 큰 물에서 놀아야 더 성장할 수 있다. (많은 관중은)판이 깔린 것 아니겠나. 잘 던져야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는 떨리는 속내도 고백했다.
오는 9월로 예정됐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연기됐다. 아시안게임을 꿈꾸던 원태인에겐 아쉬움이지만, 시즌 도중 한달가량 에이스의 이탈을 겪어야했던 삼성의 시즌에는 다행일 수 있다.
"살짝 부담감도 있었는데, 연기되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난 아시안게임이 아니라 삼성을 위해서 야구하는 사람이다. 삼성 선발로서 책임감을 갖겠다. 부상만 없으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매년 10승을 할 수 있는 투수가 목표다. 오늘이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