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모처럼 야구의 낭만이 LA 야구팬들의 마음을 적셨다.
LA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시즌이 40% 가량 진행된 현재 39승23패(승률 0.629)로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다.
한순간도 안심할 수 없다. 지구 2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40승24패)가 승차 없는 2위로 따라붙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6일(한국시각) LA 다저스타디움은 달랐다. 'LA 라이벌' 에인절스와 맞붙은 이날, 다저스는 승부보다 야구의 로망(낭만)에 초점을 맞췄다.
타일러 앤더슨은 올시즌 다저스에 찾아온 복이자 신데렐라다. 앤더슨은 2016년 데뷔 이래 콜로라도 로키스를 시작으로 지난해 시애틀 매리너스까지 4팀을 전전했다. 꾸준히 선발 기회를 받았지만, 확고한 입지를 잡지 못했다. 지난해까지 통산 117경기에 등판, 29승 38패에 그쳤다.
올해는 다르다. 이날까지 무려 8승 무패. 평균자책점 2.82다. 또한명의 신데렐라인 팀동료 토니 곤솔린(8승무패 평균자책점 1.42)과 함께 나란히 리그 다승 공동선두다.
이날도 앤더슨은 눈부셨다. 오타니 쇼헤이, 마이크 트라웃, 자레드 월시 등 거포들이 즐비한 에인절스 타선을 상대로 8회까지 볼넷 2개를 내줬을 뿐, 안타 하나 맞지 않고 꽁꽁 묶었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평소와는 달랐다. 앤더슨은 8회까지 무려 117구를 던졌다. 점수는 4점차. 결코 안심할 차이가 아니다.
하지만 사령탑은 앤더슨을 믿고 9회 마운드에도 올렸다. 2017년 8월 24일 리치 힐 이후 1756일만에 다저스에 찾아온 노히터의 기회였다.
첫 타자 트라웃을 삼진처리할 때까진 좋았다. 하지만 오타니에게 깨졌다. 오타니는 앤더슨의 초구 컷패스트볼을 통타, 우익선상 날카로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날렸다.
우익수로 나선 무키 베츠는 전력질주했다. 타구 속도와 코스를 고려하면 얼핏 봐도 잡기 힘든 공이었다. 평소의 베츠라면 깔끔한 펜스플레이로 오타니가 3루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데 주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츠는 무리한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몸을 던졌다. 원래 퍼펙트나 노히터에는 기적 같은 수비가 따라붙기 마련. 애석하게도 오타니의 타구에는 미치지 못했고, 오타니는 3루까지 내달렸다.
대기록이 깨진 이상 앤더슨을 더이상 무리시킬 이유는 없었다. 다저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팬들은 교체되는 앤더슨을 향해 뜨거운 기립박수를 쏟아냈다.
다저스는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렐이 적시타를 허용했지만, 추가 실점 없이 에인절스의 추격을 막아냈다. 이날 앤더슨의 기록은 시즌 8승째, 8⅓이닝 1안타 1실점으로 남았다.
흔히 투수의 한계투구수로 불리는 100~110구를 넘긴 뒤에도 대기록에 끝까지 도전한 앤더슨, 그를 믿고 맡긴 사령탑, 끝까지 지켜주고자 애쓴 베츠까지. 야구의 낭만을 1경기 짜리 시나리오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런 경기가 아닐까.
올시즌 선발 노히터 경기는 단 1경기다. 에인절스의 리드 데트머스가 지난달 탬파베이 레이스를 상대로 이뤄냈다. 오타니의 3루타는 팀동료의 '시즌 유일' 명예를 지켜낸 한방이기도 했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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