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우완투수 윤산흠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우선 독특한 이름이 눈에 띄고 아담한 체격에 놀라게 된다. 키 1m78, 체중 73kg. 어디까지나 KBO(한국야구위원회) 선수 소개 프로필에 적혀있는 공식 자료다. 1m90 안팎, 100kg 넘는 '빅사이즈' 투수들이 쏟아져나오는 KBO리그에서, 프로선수답지 않은 신체 조건이다. 25일 대전야구장 1루 더그아웃에서 만난 윤산흠은 운동선수라기 보다, 평범한 대학생처럼 보였다.
마운드에서 윤산흠은 다르다. 다이내믹한 투구폼으로 147~148km 강력하고 빠른 공을 뿌린다. 온몸으로 혼신을 다해 던진다. 싸움꾼처럼 거침없이 상대 타자를 몰아붙인다. 윤산흠은 요즘 한화 투수 중 가장 눈에 띄는 젊은 자원이다.
1999년 생 23세. 짧은 시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는 고창 영선고를 졸업하고 프로 지명을 못 받아 독립야구단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했다. 일종의 패자부활전에 나선 셈이다. 잠재력을 인정받아 2019년 두산 베어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는데, 프로의 벽은 높았다. 자리를 못 잡고 방출됐다. 야구만 보고 달려온 스무살 야구인생. 야구를 놓을 수 없었다. 독립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유니폼을 입었다. 송진우 전 감독과 인연이 시작됐다. 지난 해 6월, 그를 눈여겨본 한화 이글스가 연락을 했다. 이렇게 다시 프로선수가 됐다.
"두산에서 2군 경기에 나갈 때도 그랬지만 공을 던질 때 가장 행복하다. 야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다시 기회를 준 한화가 너무 고마웠다."
광주 진흥고를 다니다가 전북 고창 영선고로 전학을 갔다. 심기일전해 새출발 하고 싶은 마음에 개명까지 했다. '윤영빈'이 '윤산흠'으로 다시 태어났다. 진흥고 시절, 내야수 윤산흠은 투수가 하고 싶었다. 작은 체구 때문에 꿈을 이루기 어려웠다. 팀에 경쟁력있는 투수가 많았다. 고민끝에 지금은 사라진 신생팀, 영선고로 전학을 결정했다.
24일 대전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 1-0으로 앞선 6회초 1사 1,3루에서 불펜에 콜 사인이 떨어졌다. 선발 장민재에 이어 등판했다. 볼넷을 허용해 이어진 1사 만루. 한방이면 흐름이 넘어가는 위기였다. 윤산흠은 돌아가지 않았다. 직진이다. 상대 5번 타자 강민호를 유격수 땅볼로 유도해 병살타로 처리하고 이닝을 끝냈다. 10연패 중이던 팀이 3대0 영봉승을 거두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경기를 돌아보며, 구원투수 윤산흠을 올리는 게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고 했다. 위기에 강한 투수 윤산흠의 장점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윤산흠은 그날 ⅔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고, 프로 첫 홀드를 따냈다.
"감독님이 공격적인 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어려운 상황에서 등판해 만루까지 몰렸지만 자신있었다. 안 맞을 자신이 있었다."
시즌 초 1,2군을 오르내리다가 6월 14일 1군에 다시 올라왔다. 지금까지 8경기에 등판해 9⅔이닝 1실점, 평균자책점 0.93. 치열하게 맞서 싸운 결과다.
역동적인 투구폼을 보면, 금방 떠오르는 메이저리그 선수가 있다. 맞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으로, 2년 연속 사이영상을 수상한 팀 린스컴.
"작은 체구로 온몸으로 던지는 린스컴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체격이 작은 핸디캡을 극복하려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재 투수폼이 만들어졌다."
수베로 감독은 윤산흠을 2군으로 내려보낼 때 보완해야할 점을 주문하면, 항상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커브를 배우고 다듬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지난 비시즌 때 구단에서 만들어준 훈련 프로그램에 따라 연습했는데, 구속이 3~4km 증가했다. 로사도 1군 투수코치님과 박정진 2군 투수코치팀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감사한다."
한화는 지난 시즌 종료 후 '플라이오케어(Plyocare)'를 활용한 구속 향상 훈련 메뉴얼을 선수들에게 줬다. 다양한 무게의 고무공을 활용해 투구 매커니즘을 개선하는 훈련으로 투구 시 근육 움직임 등 몸 상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원활하게 스프링캠프를 준비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구속 향상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올 시즌 다른 목표는 없다. 안 아프고 계속해서 경기에 나가고 싶다."
'이글스 극장'에선 윤산흠의 '불꽃투'가 상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