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아내가 울더라.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왔다."
야구선수는 1년중 스프링캠프 포함 7~9개월을 일한다. 원정 9연전이라도 나오면 열흘 동안 가족들의 얼굴을 못보기도 한다.
그런 야구선수를 내조하는 아내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바로 선수 그 자신이다. 얼마전 은퇴식을 치른 박용택도, 이날 '첫' 은퇴투어를 가진 이대호도 아내 앞에선 눈물을 참지 못한 이유다.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클리닝타임. 10개 구단 팬이 한마음으로 "대~호!"를 외쳤다. 마지막 시즌에 임하는 이대호, KBO 역사상 이승엽 이후 두번째로 진행되는 은퇴투어를 알리는 시작이었다.
잠실구장을 가득 메운 2만 3750명의 야구팬들. 그 수많은 눈 앞에서 이대호의 아내 신혜정씨는 마이크를 잡았다. 조선의 4번, 거인의 자존심, 부산의 심장. 태산 같은 남자의 아내다운 용기였다.
신씨는 "영광스런 자리 만들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처음 만난 그때부터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의 선수이자 아빠, 남편으로 함께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 건강하고 빛나는 은퇴 시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응원하겠다"고 인사를 전했다. 감정이 가득 담긴, 떨리는 목소리였다.
오히려 먼저 눈물이 터진 쪽은 이대호였다. 이대호는 "나보다 아내가 더 많이 울줄 알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는가 싶더니 이내 '흑'하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대호는 "더 좋은 사람으로 남겠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로 보답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본야구 시절 은사인 오사다하루(왕정치) 감독부터 팀 후배 야나기타 유키, 롯데 시절 스승인 제리 로이스터-양상문 전 감독, 수영초등학교 시절 이대호를 야구에 입문시킨 신종세 전 감독 등의 인사가 뒤따랐다. 뒤이어 10개 구단 팬들은 한마음으로 "이대호 선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고, 이대호는 사방의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올스타 멤버들은 앞다투어 이대호를 헹가래 치며 그의 은퇴 투어를 축하했다.
"잠실구장이 가득 찼다. 그 관중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저기서 아내가 울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니 왈칵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올해 처음으로 운 것 같은데…행복하고 즐거운 추억을 안고 돌아간다. 감사하다."
잠실=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