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 이래도 '플래툰시스템'만 고집할 건가?
'플래툰시스템' 신봉자 데이브 로버츠 LA다저스 감독이 무릎을 탁 치고 후회할 장면이 나왔다.
주전 유격수 무키 베츠의 발가락 부상으로 행운의 선발 출전 기회를 얻은 김혜성(26)이 마치 로버츠 감독에게 보란 듯 호쾌한 홈런포를 터트렸다. 그것도 로버츠 감독이 철저히 김혜성을 배제하던 왼손 투수를 상대로 날린 홈런포였다.
이 한방으로 김혜성을 둘러싸고 있던 '플래툰 시스템'의 결계가 옅어질 가능성이 생겼다.
김혜성은 1일 오전(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메이저리그(MLB) 뉴욕 양키스와의 인터리그 홈경기 때 9번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 김혜성은 전날에는 9회초 대수비로 잠깐 출전했다. 전날 경기에 양키스 선발이 좌완에이스 맥스 프리드라는 점 때문에 김혜성은 벤치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로버츠 감독이 김혜성에 대해 철저히 플래툰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성은 지난 5월초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이후 3할대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번 시즌 19경기에서 타율 0.366(41타수 15안타) 1홈런 5타점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근 15경기에서도 타율 0.364를 찍었다.
그러나 왼손 투수가 나오면 여지없이 벤치에서 대기하는 신세가 됐다. 특히 지난 19일 토미 에드먼이 부상에서 돌아온 뒤로는 100% 플래툰시스템에 의해 출전 여부가 결정됐다. 왼손투수가 나오면 김혜성은 쉬는 날이나 마찬가지 신세였다.
그런데 중대한 변수가 발생하며 로버츠 감독이 플래툰을 고집하지 못하게 됐다. 특급 스타 유격수 무키 베츠가 심야에 집안에서 움직이다가 가구에 왼발을 부딪히면서 경미한 골절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로버츠 감독은 지난 5월 31일 양키스와의 3연전 첫 경기를 마친 뒤 "베츠가 신발을 신는 것도 힘들어했다. 며칠 간은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부상자 명단에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베츠의 부상으로 인해 김혜성에게 출전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는데, 곧바로 1일 경기에 선발 출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김혜성은 어렵게 찾아온 기회에 확실한 임팩트를 남기며 스스로의 입지를 굳히는 모습을 보여줬다. 1회말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나간 김혜성은 2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매서운 타격솜씨를 과시했다. 심지어 상대투수는 김혜성이 빅리그에서 처음으로 상대하는 왼손투수였다.
로버츠 감독이 플래툰 시스템을 앞세워 철저히 기회를 막아버렸지만, 사실 김혜성은 왼손 투수에게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배팅 기술을 갖춘 선수였다는 게 드러난 순간이다.
김혜성은 8-0으로 앞선 2회말 2사 2루 때 양키스 좌완 투수 브렌트 헤드릭을 상대했다. 초구 헛스윙 이후 볼을 골라내며 집증력을 끌어올린 김혜성은 이후 3개 연속 파울 커트로 투수를 흔들었다. 이어 볼카운트 2B2S서 8구째 92.2마일짜리 포심을 통타해 우중월 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렸다.
왼손 투수를 상대로 처음 기록한 홈런이자 김혜성의 시즌 2호 홈런이었다. 김혜성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간 순간, 로버츠 감독의 마음 속에서도 플래툰 시스템에 대한 고집이 무너졌을 듯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