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하나시티즌과 김천 상무의 '하나은행 K리그1 2025' 19라운드. 0-0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45분. 갑자기 관중석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한 팬이 쓰러졌다. 경기장 E석에 있던 다른 관중들이 휴대폰 불빛을 키며 소리를 질렀다. 이를 캐치한 김천 골키퍼 이주현이 심판과 벤치를 향해 다급한 신호를 보냈다. 주심은 즉각 경기를 중단했고, 바삐 움직이던 선수들도 발을 멈췄다. 양 팀 벤치에 있던 의료진이 빠른 속도로 쓰러진 관중을 향해 달려갔다. 삽시간에 근처까지 간 의료진은 전광판을 넘어섰고, 사다리가 없는 가운데, 서로 목마를 태워주며 관중석 진입에 성공했다.
상황은 심각했다. 제세동기까지 투입됐다. 대전 서포터스는 응원에 사용하던 확성기를 이용해, 의료진이 원하는 물품을 알렸다. 누구랄 것도 없이 치료용품을 들고 관중석까지 뛰어갔다. 발빠른 대처 속, 다행히 쓰러졌던 팬은 깨어났다. 나이 30대로 알려진 이 관중은 뇌졸중을 앓고 있었는데, 더운 날씨 속 순간 흥분해 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 일어설 수 있었지만, 안정을 위해 구급차로 이송했다. 이 관중은 정상적으로 회복한만큼, 병원 대신 귀가를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을 들은 대전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최근 구단 의료진의 빠른 대처로 관중의 목숨을 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달 25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강원FC전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전반 16분, 광주 서포터스석에서 응원을 하던 13세 어린이팬이 쓰러졌다.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며 열사병 증세가 왔다. 이를 인지한 선수들이 의무진에게 손짓을 했고, 홈팀 광주 뿐만 아니라 원정팀 강원 의료진 역시 쏜살같이 달려갔다.
피치에서 관중석까지 올라가기 힘든 높이였지만, 관중석에서 신속하게 사다리를 내렸다. 발을 동동거리던 의무진은 재빠르게 관중석 진입에 성공했고, 빠른 응급조치로 관중을 구해냈다. 강원은 김범수 의무 트레이너와 이강훈 물리치료사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온으로, 관중석에서 쓰러지는 팬들이 종종 생기고 있다. 더운 날씨 속 응원을 하다보니, 탈진이나 열사병이 대부분이다. 초동 대처가 중요할 수 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발빠른 움직임으로 불행한 사고를 막고 있다.
선수들 못지 않은 폭발적인 스피드로 관중에게 향하는 의무진의 헌신은 감동스러울 정도다. 의무팀들은 이구동성으로 "내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겸손해 했다. 선수와 심판들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골키퍼 이주현은 "과분할 정도로 많은 칭찬을 받았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심판들은 주기적으로 안전 수칙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매뉴얼 대로 움직이고 있다. 팬들 역시 선진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빠르게 상황을 알리고, 필요하면 직접 상황을 돕기도 한다.
K리그 경기규정의 제6조 '의료시설'에 따르면, 홈팀은 경기당 최소 2대의 구급차와 의사, 간호사, 1급 응급구조사를 배치해야 한다. 대전은 실제로 구급차 2대, 간호사 1명, 응급구조사 1명을 현장에 대기시켰고, 다른 팀보다 많은 3명의 의무 트레이너를 보유하며 위급 상황에서 빛을 발휘했다. 각 팀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의무팀이 관중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미리 사다리를 배치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도 발빠른 조치에 나섰다. 관중석에도 의료 시설을 필수적으로 갖추도록 하는 규정을 내후년 도입 예정이다. 이들의 '환상 콜라보' 덕에 K리그에 관중 사고는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