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지금도 늦긴 했지만, 3년 전부터도 물러났어야 했다. 늙은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된다."
KIA 타이거즈 맏형 최형우는 지난 1월 미국 어바인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나면서 후배들을 자극할 한마디를 남겼다. 자신을 뛰어넘어 달라는 것. 최형우 개인적으로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팀의 4번타자를 맡고 있는 게 영광이지만, 팀의 관점에서 보면 미래가 어둡다는 뜻도 됐다. 최형우를 밀어낼 만한 중심타자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
최형우는 "항상 이야기하지만, 내 개인적인 것은 필요가 없고 KIA가 발전하고 더 좋아지려면 내가 잘하든 못하든 이제는 조금 물러날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도 늦긴 했지만, 3년 전부터도 물러났어야 했다. 그래야 젊은 선수들이 중심 타선에서 치면서 팀이 더 발전해 나갈 수 있다. 늙은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된다. 그 생각은 (3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최형우의 바람은 또 이뤄지지 않았다. 정규시즌을 다 마쳐가는 지금 최형우는 또 KIA의 4번타자 자리를 지켰다.
최형우는 130경기에서 타율 0.308(461타수 142안타), 24홈런, 85타점, OPS 0.935를 기록했다. KIA의 유일한 3할 타자고, 타점과 OPS 모두 팀 내 1위다. 외국인 타자 패트릭 위즈덤이 33홈런을 쳐 홈런 부문에서만 2위로 밀렸다.
최형우는 건재했으나 KIA는 망가졌다. 그가 우려했던 그대로다. KIA는 지난해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올해 8위까지 추락했다. 시즌 초반 김도영, 나성범, 김선빈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이탈했어도 5강 싸움은 했어야 했는데, 하위권에 머물렀다.
부상도 결국은 핑계다. 선수의 부상 관리 역시 실력이기 때문. 부상 이력 없이 건강하면 그만큼 시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최고령인 최형우는 130경기에 출전해 팀 내 야수 1위에 올랐다. 지명타자로 뛰기도 했지만, 최형우보다 몸 관리를 잘한 후배가 없었다는 뜻이다.
1년 내내 어둡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선우가 나성범이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 중심 타자로 성장했다. 타율 0.265(412타수 109안타), 17홈런, 52타점, OPS 0.755를 기록,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최형우를 밀어낸다는 기준으로 보면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후배들의 부상과 부진 속에 최형우는 또 KIA의 FA 계약 1순위가 됐다. 나이가 무색하게 팀 내 타격 지표 전체에서 거의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최형우에게 도대체 얼마를 줘야 하냐'는 말이 시즌 내내 나왔다.
최형우는 2016년 시즌 뒤 처음 FA 자격을 얻어 KIA와 4년 100억원에 계약했다. KBO 역대 최초 100억원 계약이었다. 2021년 시즌을 앞두고 FA 재자격을 얻은 최형우는 KIA와 3년 총액 37억원에 계약했고,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1+1년 총액 22억원 비FA 다년계약에 성공했다. 9년 동안 KIA와 계약한 총액은 159억원이다.
나이를 고려하면 장기 계약은 어렵겠지만, KIA가 최형우를 붙잡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재 최형우 없는 KIA 타선은 힘이 크게 떨어진다. 외국인 타자 위즈덤도 끝내 최형우를 4번에서 밀어내지 못했다.
최형우는 후배들에게 자신을 밀어달라고 꾸준히 이야기하는데, 자꾸 팀 내 최고 타자 자리를 지키며 재계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