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올림픽 메달 순위권에 드는 스포츠 강국이지만 그 이면의 체육학 연구 환경은 구조적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대다수가 이공계(STEM) 분야에 압도적으로 편중된 현재 상황에서 체육학은 인문사회 및 예술 분야와 함께 1% 내외의 작은 몫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구조적 딜레마에 갇혀 있다.
그러나 체육학은 단순히 경기력 향상에만 기여하는 학문이 아니다. 운동 과학은 만성질환 예방, 노인 건강 관리, 아동 발달 지원 등 국민 삶 전반과 직결되며, 이는 국가 의료비 절감과 사회적 비용 축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체육학 연구비 부족은 단순히 학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치명적인 제약 요인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체육학을 '전략적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고유의 특성을 반영한 연구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체육학 연구비 수주 환경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바로 1%의 덫에서 비롯된다. 국가 R&D 예산이 반도체, AI 등 국가 전략기술에 수십조원 단위로 집중되면서 공학 분야가 전체 대학 연구비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동안, 한국연구재단 학술지원사업에서 체육학이 속한 예술·체육학 분야는 여전히 1% 안팎에 머무는 극심한 자금편중을 겪고 있다. 또한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 내에서 체육 분야 증액률은 1.8%에 불과해 콘텐츠·관광 분야의 10.7% 증액과 대비되며 이는 총 예산의 약 0.6%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는 정부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체육학이 후순위로 밀려나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낮은 예산 비중은 고가 장비가 필수적인 스포츠 과학 연구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며, 결국 많은 연구자들이 장기적인 기초 연구보다 단기 정책 과제나 소규모 산업화 연구에 의존하게 만들고 있다. 그 결과, 학문적 토대가 약화되고, 스포츠 산업을 지탱할 지식 기반이 고갈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 악순환을 끊고 체육학 연구 경쟁력을 강화하여 국가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연구 성격에 따른 지원 주체의 분리와 예산을 증액하는 '투 트랙(Two-Track) 전략'이 필요하다. 첫 번째 트랙은 한국연구재단(NRF)의 역할 강화이다. NRF는 체육학의 기초 연구환경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현행 인문사회 분야 내에서 '예술·체육학' 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예산 배정 비율을 의무화하거나, 아예 별도의 융합 과학 연구 분야 트랙을 신설하여 체육학이 인문학/사회과학 연구비와 경쟁하는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 또한 스포츠 과학 특성화 연구소 및 센터의 고가 핵심 연구 장비 구축 비용을 장기적으로 지원하여 연구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
두 번째 트랙은 국민체육진흥공단(KSPO)과 문화체육관광부의 투자 확대이다. 이들은 체육학 연구의 실용화와 산업 응용을 담당해야 한다. 스포츠 R&D를 문화예술지원이 아닌 산업 R&D의 관점에서 재편해 대규모로 증액하고, 지원 과제를 체육학 기반 학제 간 융합 컨소시엄 형태로 설계하여 체육학 연구자가 산업 수요에 맞는 대형 프로젝트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체육학 연구는 올림픽 메달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이는 국민 의료비 절감이라는 경제적 편익, 건강 수명 연장이라는 사회적 가치, 그리고 스포츠산업의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국가적 효용을 동시에 실현하는 가장 효율적인 미래투자다. 이제 정부와 국회는 체육학을 더 이상 1%의 덫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국연구재단을 통한 기초 연구 기반 확립과 국민체육진흥공단을 통한 산업 및 정책 환원이라는 전략적인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K-컬처, K-반도체에 이어 K-스포츠 과학이 세계를 선도할 때, 한국은 단순한 스포츠 강국을 넘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나아가 글로벌 스포츠 과학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 정책적 결단의 순간이다. 최관용 한국체육학회장(한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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