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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건강] "치아 1개는 1년 수명연장 가치…`구강돌봄`이 노인건강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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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이제 '어떻게 오래 살 것인가'보다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노인 건강 분야에서는 최근 '구강관리'가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치아 한 개를 지키는 일이 노년기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축이라는 연구와 현장 경험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임지준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회장은 최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연 미디어아카데미 강연에서 초고령사회 한국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돌봄 정책으로 구강관리를 지목했다.
임 회장은 개인 치과병원을 운영하면서도 30년 넘게 치매·장애인의 구강 진료 봉사에 힘써왔다. 최근에는 2050년까지 건강수명 80세를 실현하자는 목표로, 주요 직능단체 30여곳이 공동 참여하는 '건강수명 5080 국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노인의 건강 악화는 뇌나 심장이 아니라 '입 안'에서 시작된다"며 "씹지 못하면 먹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 몸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노인의 건강수명은 입 안에서 '첫 단추'를 끼우게 되는 셈이다.

◇ 건강수명 늘리는 '구강 돌봄'…"돌봄 진입을 늦추는 게 가장 큰 돌봄"
건강수명 5080 국민운동의 핵심은 노인 간 건강수명 격차를 줄이는 데 있다. 지역·소득에 따라 건강수명이 10년 이상 차이 나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임 회장은 돌봄에 들어가지 않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돌봄이라고 말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구강 관리다.
노인이 치아 문제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즉시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음식을 씹지 못하면 단백질과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근육량이 줄고, 이는 체력 저하와 체중 감소로 이어진다. 이른바 '노쇠의 도미노'다. 낙상, 골절, 욕창, 감염, 치매 진행 가속 등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질은 급격히 떨어진다.
국내 연구에서도 그 근거가 확인된다. 65세 이상 노인 3천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소 씹는 데 어려움을 겪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노쇠 위험이 2.68배 높았다.
임 회장은 "노인의 몸은 음식이 약이고, 씹는 힘이 곧 면역력"이라며 "구강관리는 노쇠와 치매의 첫 단추를 조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강 돌봄 체계 구축을 위한 '4대 과제'로 ▲ 치매 어르신·가족·지역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돌봄 인프라 구축 ▲ 방문간호·방문요양 등 노인 돌봄 체계에 치과·구강 프로그램 포함 ▲ 요양원·가정 방문을 위한 치과·치과위생사 진료 수가 신설 ▲ 전국 요양시설의 구강관리 정기화·의무화를 제안했다.

◇ 일본이 보여준 '8020 프로젝트의 힘'…"80세 노인 절반이 치아 20개"
고령화를 먼저 경험한 일본은 40년 전부터 구강건강 대책을 본격화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1989년 시작한 '8020 프로젝트(80세에 자연 치아 20개 유지)'다.
당시 일본 노인의 평균 잔존 치아는 10개에도 못 미쳤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구강건강이 곧 영양·근육·인지기능·삶의 질·의료비 지출과 직결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노인을 위한 방문 치과 진료가 세계 최초로 본격 시행됐고, 치매 환자는 연 4회까지 구강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됐다.
그 결과 일본은 2016년, 목표보다 6년 앞서 프로젝트의 성공을 공식 발표했다.
1989년 대비 잔존 치아 수는 3배 이상 증가했고, 80세 이상 노인의 20개 이상 치아 보유율이 50%를 넘어섰다. 노인 폐렴의 90%를 차지하는 흡인성 폐렴 감소와 의료비 절감에도 구강 관리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임 회장은 "치아 한 개의 가치는 약 3만달러(약 4천500만원)에 달하고, 1∼1.5년의 수명연장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본다"며 "일본이 거대한 국가 예산을 구강관리와 치매정책에 꾸준히 투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본은 요양시설 입소자에게 연 1~4회의 정기 구강관리를 의무화해 시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 요양시설 노인은 거동이 불편한 데다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에 방문 치과진료 수가가 없어 치과 진료 접근성이 매우 낮다.
임 회장은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치과 건강보험 비용이 65만∼70만 원 수준이지만, 치매·요양 환자는 이 혜택을 거의 쓰지 못한다"며 "반려동물도 방문진료를 받는 시대에 요양시설 노인은 여전히 치과 문턱이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 올바른 칫솔질은 한 번이라도 꼼꼼하게…"'333법칙'은 버려도 돼"
임 회장은 구강건강의 기본은 양치질이지만, 흔히 알려진 '333법칙'(하루 3번·식후 3분 이내·3분 이상 양치)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꼼꼼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치아를 완전히 깨끗하게 닦으면 세균이 다시 나쁜 영향을 주기까지 약 48시간이 걸린다"며 "하루 한 번만 10분 이상 꼼꼼하게 닦아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올바른 양치법으로 ▲ 칫솔은 어린이용처럼 작고 세밀한 제품을 사용할 것 ▲ 칫솔모가 많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칫솔은 3개월마다 교체할 것 ▲ 전동칫솔은 문지르지 말고 갖다 댈 것 ▲ 이가 시리거나 잘 썩는다면 불소 함유 치약을 쓸 것 ▲ 양치 전 치실을 꼭 사용할 것 ▲ 정기적 스케일링을 통해 치태·치석을 체거할 것 등을 권했다.
임 회장은 특히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사망 원인으로 꼽히는 흡인성 폐렴의 출발점이 구강 세균인 만큼 평소 구강 건강 관리에 더욱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한 요양시설에서는 치과 전문가가 주 1회 구강관리를 시행한 결과, 폐렴 입원일수가 4분의 1로 줄고 의료비도 4억원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다.
임 회장은 "80세 이상 폐렴 환자의 90%가 흡인성인데, 구강위생이 나쁘면 폐렴 위험이 1.6배 증가한다"며 "건강할 때 양치질과 치태 제거만 잘해도 치주질환과 폐렴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와 관련해서도 "치주균은 치매 원인물질인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을 촉진한다"며 "치매 치료제는 없지만, 구강관리로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bio@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