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는 존경스럽고 감동스러운 선수다. 이상수보다 더 잘하는 선수는 봤지만, 그만큼 노력하는 선수는 보지 못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 '세계 최고의 깎신' 주세혁 감독을 키워낸 '백전노장' 강문수 전 국가대표팀 총감독(전 삼성생명 감독)은 '애제자' 이상수(36)를 이렇게 평했다. 칭찬에 인색한 노스승이 "존경스럽다"고 표현할 만큼 이상수의 꺾이지 않는 분투에는 감동이 있다. 정상은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어렵다. 잘하는 선수가 되기도 어려운 엘리트 스포츠의 세계에서 가장 오래, 가장 잘하는 선수의 경지는 정말 어렵다. 2013년 지금은 아내가 된 박영숙과 파리세계선수권 혼합복식 은메달을 딴 이후 2010년대 한국 남자선수 중 가장 많은 세계선수권 메달(은1, 동 5)을 보유했고, 가장 많이 만리장성을 뛰어넘은 선수다. 판젠동, 마롱, 장지커, 쉬신, 왕추친, 린시동, 린가오위위안 등 지난 15년간 동시대 중국 톱랭커들을 모두 돌려세운, 유일한 선수다.
라스트댄스도 눈부셨다. 지난해 12월 종합탁구선수권에서 커리어 첫 남자단식 우승컵을 들어올린 후 돌연 태극마크를 내려놓더니 2025년 봄, WTT챔피언스 인천서 남자선수 최초의 단식 준우승 역사를 썼고, 11월, WTT 몽펠리에 챔피언스 단식 8강, 프랑크푸르트 챔피언스 4강에 잇달아 오르며 세계 탁구 팬들의 기립박수 속에 은퇴식을 치렀다. 앞뒤좌우 거침없는 '닥공'에 노련미와 선구안이 더해지며 '이상수 탁구'가 무르익었다. 세계랭킹이 19위로 수직상승한 직후 모두의 아쉬움 속에 이상수는 쿨하게 안녕을 고했다.
볼이 들어맞는 날이면 세상 모든 벽을 뚫어내는 '대한민국 닥공' 이상수가 새해 지도자로서 새 도전을 시작한다. 중국 귀화 '괴물 에이스' 주천희(삼성생명)의 코치가 됐다. 삼성생명 탁구단은 지난 12월 5일 '17년 원클럽맨' 이상수의 은퇴와 여자팀 코치 선임을 공식발표했다. 이 코치는 5일 새벽 카타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WTT카타르 챔피언스(7~11일), 카타르 스타컨텐더(13~18일)에서 주천희의 첫 벤치로 나선다.
'남자단식 세계 4강권' 코치의 존재는 주천희에게도, 여자탁구에도 행운이다. 코치 이상수도 한결같이 '닥공' 모드다. "목표는 천희가 아시안게임 나가서 금메달 따는 것"이라면서 "매경기 이길 생각을 해야 한다. 나가면 이기는 선수를 만드는 것. 간단하지만 포괄적인 목표"라고 했다. 주천희에게도 끊임없이 "4강, 8강 생각 말고 무조건 1등할 생각을 해야 한다"며 위닝멘탈리티를 불어넣고 있다. "운동에 타협은 없다. 특히 체력 훈련은 절대 타협 못한다. 쉬고 싶으면 나한테 운동한 걸 자신 있게 보여달라고 했다. 훈련 후엔 뭐든 다해도 된다. 선수의 의지가 중요하다. 결국 스스로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코치는 "천희는 날카로운 기술을 갖고 있지만 더 공격적으로 날카롭게 치게끔 도와주고 싶다. 연습 때 한 게 실전에 나온다. 몸에 배게 계속 훈련해야 한다. '긴장돼서 못쳤어요'는 용납이 안된다. 긴장해서 지면 그게 실력이다. 그러려면 연습 때 초집중해야 한다. 주위 상황이 눈에 안 들어올 만큼 오로지 자기 탁구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치로서 자신의 '닥공' 스타일을 주천희에게 입힐까, 주천희 스타일을 살려줄까라는 질문에 '이 코치'는 "반반"이라고 답했다. "내가 백과 포어를 5대5로 가져간다면 천희는 포어핸드와 서비스가 좋다. 코치로선 천희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공격적으로 치되 미스 안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중국을 이기려면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1월 중순 카타르 스타컨텐더 대회에선 '톱랭커' 신유빈(대한항공)과 주천희가 첫 여자복식 호흡을 맞춘다. 오른손-오른손 조합이라 움직임에 어려움이 있지만, 지난 2~3일 첫 훈련은 "꽤 괜찮았다"는 평가다. 주세혁 대한항공 감독은 "오른손끼리의 조합이 쉽지 않은데 두 선수 모두 기본기가 잘 돼 있다보니 생각보다 좋았다. 천희의 몸놀림도 가벼웠다. 이상수 코치가 복식을 잘하고, 같은 오른손잡이인 정영식(세아 감독)과 세계선수권 복식 동메달을 딴 적도 있어 움직임과 작전을 선수들에게 잘 일러주더라"라고 귀띔했다.
'대한민국 여자탁구의 희망' 신유빈, 주천희가 함께할 첫 아시안게임, 매 대회 동행하는 소속팀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메달에 대한 기대에 이 코치는 "만들어내야죠!"라고 화답했다. "남자팀은 전체적으로 평준화가 됐다. 여자팀은 신유빈, 주천희, 김나영 아래 선수들이 계속 올라와줘야 한다. 함께 발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문수 감독님이 늘 말씀하셨다. 큰 말이 없으면 작은 말이 큰 말 구실을 해야 한다고. 선수 없다는 것도 다 핑계다. 배구 김연경 감독님도 '핑계를 대려면 몇백 가지 댈 수 있다. 핑계대지 말라'고 하더라. 선수도, 지도자도 핑계는 없다. 천희에게도 그 부분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수들과 같이 발로 뛰는 지도자가 되겠다. 선수들이 질려할 것같지만(웃음) 선수들과 호흡을 잘 맞추며 하겠다. 잘 따라와줄거라 믿고 있다. 잘 듣고 소통하면서 잘 챙기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한번 미치는 날이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파괴력과 강인함을 지닌 '닥공' 이 코치에게 만리장성을 가장 많이 넘은 비책을 물었다.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싸웠다. 진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적은 한번도 없다. 내 탁구는 안맞는 날엔 누구에게도 질 수 있지만 잘 맞는 날엔 누구도 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지는 날, 꺾일 때도 많았지만 그냥 계속 했다. 앞만 보고 갔다. 연습 때 100번을 져도 실전에서 한번만 이기면 된다. 중요할 때 임팩트 있게 이기면 된다. 그 순간을 위해 계속 도전했다. 분석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를 모르는 '닥공' 이상수 코치의 만리장성을 향한 무한도전이 2026년 새해, 다시 시작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