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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시선]존폐 기로 선 선수협, 양의지 회장 시대는 마지막 기회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20-12-08 09:00


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2년에 못 미치게 활동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힘이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회장 시절을 이렇게 돌아봤다. 지난해 3월 24일 선수 투표 결과 제11대 회장으로 추대된 그는 최근 판공비 논란 속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쪽을 택했다. 취임 당시 "제 다음에 맡는 후배들이 맡고 싶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던 이대호 회장의 쓸쓸한 퇴장이다.

바통을 넘겨 받은 것은 양의지(NC 다이노스)다. 총 456표 중 103표를 받은 양의지 신임 회장은 앞으로 2년간 선수들의 대변자로 선수협을 이끌게 됐다. 공교롭게도 전-후임 회장 모두 KBO리그 최고 연봉자다. 양의지 회장은 "10개 구단 선수들이 뽑아준 영광스런 자리라고 생각한다. 책임감 있게, 선수협이 약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전했다.

지난 2년간 선수협을 향한 눈길은 더욱 싸늘해졌다. 이대호 회장 체제에서 일군 성과는 KBO 이사회가 내놓은 FA 등급제, FA 취득기간 단축, 최저 인상 연봉안과 FA 총액 상한제(80억원)을 바꾸는 것 정도에 그쳤다. 2군 선수들의 처우 개선과 선수 권익 보호 등 선수협 설립의 근간이자 목표에 대한 해답은 없었다. 이런 가운데 회장 판공비 논란이 불거졌고, 사무총장이 판공비를 현금으로 받아 유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까지 드러났다.

선수협은 지난 2000년 출범 이후 19시즌 동안 바람잘 날 없는 세월을 보냈다. 구단과의 대립 뿐만 아니라 구성원 간 갈등이 빚어진 것도 다반사. 메리트 요구를 비롯해 외국인 선수 기용 문제, 초상권 비리, 올스타전 거부 등 '자살골'을 넣으면서 일부 선수들을 위한 단체라는 소위 '귀족 협회'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이호준 전 회장이 사퇴한 뒤 2년여를 공석으로 남아 있던 회장 자리에 이대호를 사실상 '강제 추대' 형식으로 앉히며 반전을 꿈꿨지만, 결과는 더 큰 실책으로 드러났다.

양의지 회장 체제에서 구성될 선수협 19기 집행부의 역할은 그래서 막중할 수밖에 없다. 선수협이 표류하는 동안, KBO리그 선수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다. 코로나19로 인한 구단 수익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후반기부터 10개 구단 대부분이 육성 선수 및 2군을 상당 부분 정리했다. 연봉 계약에서도 '수익 악화'로 인한 한파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됐다. 선수협 판공비 논란은 하나로 뭉쳐도 모자랄 10개 구단 선수들의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다. 신임 집행부는 투명-공정성 부족이 지적된 선수협 내부 행정 및 선수들의 처우 개선 뿐만 아니라 멀어진 팬심까지 다잡아야 한다.

선수협은 선수들 스스로 권익을 증진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타의 꿈을 키우는 후배 선수들을 돕고자 만든 조직이다. 고 최동원 전 감독을 비롯해 수많은 선배들이 산고 끝에 탄생시킨 조직이다. 하지만 이런 선수협의 발자취가 그동안 자신들의 바람에 걸맞게 이어졌는지는 돌아봐야 한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선수협의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

야구계에선 '일하는 회장'이 나타나야 선수협도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단순히 주어진 회장 자리에서 봉사한다는 생각이 아닌, 스스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뛰는 이가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부족한 부분도 많겠지만, 선수들이 뽑아줬으니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 임기동안 보여드리고 인정받으면 기분 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양의지 회장의 포부는 2년 뒤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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