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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얼마전 명예의 전당(HOF)에 헌액된 일본인 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박찬호, 노모 히데오와 같은 1세대 아시아인 개척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기사를 쓴 앤서니 카스트로빈스 기자는 '이치로는 HOF에 헌액된 최초의 아시아 선수로 이는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야구가 무척 사랑받는 두 대륙을 연결하는 가장 의미있는 다리를 상징한다'고 평가한 뒤 '이치로가 2001년 시애틀 입단으로 MLB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메이저리그 역사의 변곡점이었으며, 이치로는 HOF 투표 발표 직후 이를 불의 세례(Baptisim by fire)라고 묘사했다'고 전했다. 불의 세례는 1943년작 미국 단편 다큐멘터리 영하로 전쟁에 처음 참가하는 미국 병사를 다뤘다. 이치로가 이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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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빈스 기자는 '다저스가 지난 2년간 메이저리그 오프시즌서 투타겸업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와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각각 역사에 남을 계약 규모로 데려오고, 이번에 사사키 로키 포스팅 쟁탈전에서도 이겼는데, NPB에서 MLB로 넘어오는 길이 30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정당화됐다'며 '선발투수들을 보면 그런 기회가 열린데 대해 태평양을 건너 개척자 역할을 한 노모 히데오와 박찬호에 더 큰 감사를 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자는 '당시 박찬호는 다른 배경을 지닌 선수들을 데려옴으로써 메이저리그의 발전을 바랐던 다저스 구단주 피터 오말리의 작품'이었다며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에 와 2년 뒤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17년을 던졌고, 2001년에는 다저스에서 올스타에 뽑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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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데뷔는 박찬호가 노모보다 1년 빠른 1994년 다저스 입단과 함께 이뤘다. 당시 박찬호는 동기 대런 드라이포트와 함께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역대 17, 18번째 선수였다. 그러나 박찬호는 금세 마이너리그로 내려가 2년간 수업을 받게 된다.
그 사이 노모가 1995년 일본서 건너와 토네이도 투구폼을 앞세워 신인왕을 차지하며 메이저리그를 먼저 접수했다. 박찬호는 1996년 첫 풀타임 시즌을 맞아 가능성을 확인한 뒤 1997년 선발투수로 성공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박찬호는 아시아 출신 최다승인 124승에 1993이닝, 1715탈삼진, 평균자책점 4.36을 올렸고, 노모는 두 번의 노히터를 포함해 123승에 1976⅓이닝, 1918탈삼진, 평균자책점 4.24를 기록했다. 둘 다 HOF에 오르지는 못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