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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 "상처의 연대" 추상미가 연기 아닌 연출을 택한 이유

이승미 기자

기사입력 2018-10-20 09:22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상처 입은 이가 또 다른 상처 입은 이를 안아주는, 슬프도록 따뜻한 '상처의 연대'. 다큐멘터리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한국 전쟁과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지 않고 '인도적인 사랑'에만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상처의 연대'에 있었다. 배우로 더 많이 알려진 추상미 감독은 '폴란드로 간 아이들'(보아스 필름)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아가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는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1951년 북한에서 폴란드로 보낸 6·25 전쟁 고아 1500명과 폴란드 교사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출을 맡은 추 감독이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가진 라운드 인터뷰에서 개봉을 앞둔 소감과 영화 속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전했다.

추 감독은 영화 '접속'(1997), '생활의 발견'(2002), '누구나 비밀은 있다'(2004), '열세살, 수아'(2007) 등을 통해 실력파 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단편 영화 '분장실'(2010), '영향 아래의 여자'(2013)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도 지난 13일 폐막한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공식 초청돼 공개된 후 호평을 받고 있다.


우연히 폴란드로 간 1500명의 한국전쟁 고아들의 실화를 알게 된 추 감독은 아이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품어준 폴란드 선생님들의 헌신적이고 위대한 사랑에 감동 받는다. 위대한 사랑의 실체를 찾아 탈북소녀 이송과 함께 폴란드로 떠난 추상미는 실제 아이들이 처음 도착했던 기차역과 양육원을 찾아가고 폴란드 선생님들을 만나 당시 아이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

이날 추 감독은 자신의 연출작을 선보이게 된 소감에 대해 "결과물을 보고 만족스럽다기보다, 예산이 많지 않아 혼자 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오류가 있을까 걱정과 긴장을 많이 했다. 정말 저의 손길 하나하나 모두 닿은 영화다. 그래서 걱정도 더 컸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받았던 깊은 감동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추 감독은 "시사회 전에 서울극장, 부산영화제에서 객석에서 봤는데 관객분들과 섞어서 봤다. 부산영화제는 정말 한편의 영화 같았다. 그날 아침에 태풍이 정점을 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부산영화제 측에서 상영과 GV가 모두 취소됐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근데 배급사 대표와 저는 관객분들이 한 두분이라도 오시면 다시 돌아가셔야 되니까 상영을 못하면 인사라도 하자 싶어서 상영관으로 갔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관계자분들이 일곱분이 오셨다더라. 그런데 상영관에 들어갔는데 150명이 계셨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정말 지질하게 울어버렸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이날 추상미 감독은 극심했던 산후 우울증을 영화 연출을 하면서 극복했다고 전해 눈길을 끌었다. 추 감독은 "그때 제가 겪었던 산후 우울증이 아이에 대한 애착이 심해지는 거였다. 아이가 계속 잘못되는 악몽을 계속 꾸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다 내 아이 이야기 같고 그랬다. 드라마에서 비극적인 아이가 나오면 심하게 우울하고 눈물이 났다. 그게 과도한 모성 호르몬에 영향으로 그렇다고 하더라. 산후 우울증 관리가 잘 안돼서 일반 우울증으로 번진 상황이었다"고 당시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다가 다큐에서 나온 북한 꽃제비 사진을 봤는데 정말 우리 아이인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사실 거 전까지는 꽃제비라는 말도 잘 몰랐다. 그 꽃제비 아이가 죽었다는 기사를 또 보게 됐는데 눈물이 한꺼번에 주룩주룩 나더라"며 "이 우울증에 벗어나기 위해서 장편영화를 만들고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참이었고 소재를 찾고 있었는데 정말 운명적으로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 감독은 "그러다가 대학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 가서 폴란드로 간 북한 고아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욜란타의 소설 '김귀덕'과 이야기를 듣게 된 거다. 그래서 그 자료들을 다 다 받게 됐다. 그걸 집에 와서 보다가 너무 감동을 받았다. 이런 실화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혹시 그 실화가 의도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저는 꽃제비 영상을 본 이후라 북한 고아들이 한국전쟁 초기의 가장 비참한 결과물인데, 이 꽃제비들은 또 다른 고아가 아닌가 싶더라. 분단이라는 비극 속에 다 연결이 있고 접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폴란드로 간 한국 전쟁 고아에 대한 극영화 '그루터기들'을 준비하면서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까지 제작하게 됐다는 추상미. 그는 "극 영화를 만들기 까지의 리서치 여정을 모두 담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의 결과를 다루면서도 그 어떤 이데올리기의 대립을 다루지 않고 오로지 인간애와 인간적 연대를 그린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 감독은 "사실 이 일들이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일어난 일들이다. 북한 고아들을 품은 이 선생님들은 당의 소집으로 모인 폴란드 선생님들이었다. 그리고 이분들은 가톨릭 신자분들이었다. 가톨릭고 사회주의가 손을 잡고 가는 독특한 환경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이분들은 동양의 고아들을 품은 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이념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세대와 인종과 이념을 초월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다. 폴란드 선생님이 한국 아이들을 품었다는 것 자체가 인종을 초월하고 탈북민 송이씨와 함께 해 문화를 초월한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이 왜 발발했는지 정도의 이야기는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런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옳고 그름의 전제를 두명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사회에서부터 '상처의 연대'를 강조했던 추 감독. 그는 "저도 산후우울증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상처의 연대가 있었다. 폴란드 선생님들도 2차 대전의 아픔을 겪은 분들이었는데 정말 2차대전의 상처를 처절히 겪은 분들이었다. 저 또한 산후 우울증의 상처가 없었다면 이 여정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준비중인 극영화 '그루터기'에 대해 "제가 준비할 때는 폴란드 아이들이 모두 북한 아이였다고 알고 있고 시작했는데 '폴란드로 간 아이들' 영화 속에서 나오나 시피 남한 아이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조금의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추 감독은 앞으로의 연출 계획과 배우로 활동을 묻는 질문에 "3년 투자해서 영화 공부를 했으니까 연출에 더 집중을 할 생각이다. 감독으로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연출을 하며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하게 되고 사회와 소통하게 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들이 생기게 됐다. 이런 시대, 이런 시점에 예술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저의 관심사를 생각해봤을 때 지금 일에 더 만족스럽다. 당분간은 이 활동에 집중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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