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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인이란 자부심이 차오른다. 나이도 성별도 언어도 다르지만 배우 윤여정(75)과 진 하(28)의 마음 깊은 곳에는 내 조국,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파친코'를 위해 두 손을 잡은 월드 클래스 배우들. 마스터피스 탄생은 당연했다.
애플 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수휴 각본, 코고나다·저스틴 전 연출)에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며 맞서 싸워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된 노년의 선자 역을 맡은 윤여정과 선자의 손자이자 둘째 아들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 백 역의 진 하. 두 사람이 18일 오전 스포츠조선과 화상 인터뷰를 통해 '파친코'를 선택한 계기부터 작품에 쏟은 열정을 고백했다.
특히 '파친코'는 지난해 '미나리'(정이삭 감독)를 통해 한국 여배우 최초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을 비롯해 영국 아카데미(BAFTA), 미국 배우 조합상(SAG), 미국 독립영화상 등 전 세계 유력 영화제에서 무려 42관왕을 달성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배우'로 등극한 윤여정의 할리우드 신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장애를 가진 부모에게 태어나 산전수전을 겪는 주인공 선자를 연기한 윤여정. 갖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한 후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도 잠시 손자 솔로몬 백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며 맞서 싸우는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어린 선자, 소녀 선자, 그리고 노년의 선자 3인 1역에 도전한 그는 선자 그 자체로 변신한 메소드 열연으로 'K-배우'의 클라스를 입증, 다시 한번 인생캐릭터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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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엄마가 1924년생이라 '파친코'가 그린 역사에서 사셨다. 나는 해방 이후 태어나 완벽하게 시대상을 알 수 없지만 '파친코'를 통해 많이 배웠다. 순자의 둘째 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박소희는 실제 '자이니치(일본에 사는 한국인 또는 조선인을 지칭하는 말)'라고 하더라. 박소희는 '자이니치'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일본 사람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그 부분을 정말 많이 배우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애플 TV+가 한국의 역사를 소재로 한 '파친코'를 런칭한 것에 대해 "장대한 역사를 좇는 드라마다. 소설과는 다르며 나 역시 작품을 보고 만족했다. 봉준호 감독 말마따나 1인치의 장벽을 넘으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세상이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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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윤여정을 중심으로 한국 콘텐츠가 돌아간다'라는 호평에 "콘텐츠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일이 없다. 나는 그렇게 바보는 아니다"며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스티븐 연도 남우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 만난 스티븐 연에게 '넌 지금 주연상을 수상 안 한 게 너무 다행이다. 후보에 선정된 것만으로 기뻐해라. 만약 상을 받았다면 지금의 너는 네가 아닐 것이다'라며 조언하기도 했다. 미국 아카데미는 봉준호 감독이 노크해 문을 열었고 거기에 이상한 할머니가 상을 받게 됐다. 정말 나는 운이었다"고 겸손을 보였다.
작품 속 경상도 사투리를 소화한 어려움도 털어놨다. 윤여정은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18, 최성현 감독) 때 사투리 연기를 하느라 정작 내 캐릭터의 연기를 망쳤다. 사투리 연기에 너무 집중했다. 아무리 해도 그 지역의 원어민처럼 할 수가 없더라. 사투리 연기를 신경 쓰면 다른 연기를 할 수 없었다. 이번 '파친코'는 전과 달리 사투리 연기를 신경쓰려고 하지 않았다. 노년의 선자는 일본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사투리 억양도 많이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이번 선자의 경상도 사투리는 내식대로 해석해 연기했고 아무도 토 달지 말라고 했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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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하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했던 경험과 많은 연결이 됐다. 내 할머니가 돌아가시긴 했지만 1911년에 태어났고 일제강점기를 겪었다. 아버지의 경우는 일본어를 유창하게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다. 당시 시대에서는 강제적으로 일본어를 해야만 했다. 그런 역사를 TV쇼에서 보여줄 수 있어 특권이 됐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내 가족과 역사를 연기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할 수 있게 돼 기뻤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공감이 많이 됐다. 솔로몬 백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면이 솔로몬 백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실제로 솔로몬 백처럼 배우를 하기 전 은행, 금융업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는 은행 인턴쉽을 하려고 했다. 만약 연기하지 않았다면 솔로몬 백과 같은 사람이 됐을 것이다. 솔로몬 백처럼 언제나 가면을 쓰고 성공을 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졌을 것이다. 솔로몬 백 캐릭터는 선자의 희생의 결과물이다. 거기에서 나온 부담감이 있다. 많은 기회를 가진 세대다. 나 역시 부모님의 희생이 많이 있었다. 이런 부분이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불러올 것이다. 희생에 대한 정당성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면을 이 작품이 아름답게 표현한 것 같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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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진 하는 "윤여정과 같이 연기한다는 게 꿈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 되면서 스타와 일을 한다는 흥분감보다 '파친코' 작품 안의 관계에 집중하려고 했다. 다만 솔직하게 말하면 윤여정 선생님은 너무 웃기다. 재미있는 사람이다"고 추켜세웠다.
이에 윤여정은 "정말 신기하게 진 하와 생일이 같다. 진은 굉장히 똑똑하고 철학적이다. 미국에 사는 우리 아들이 진 하를 TV 연속극으로 처음 봤다고 하더라. 연속극 자체가 완전 별로였는데 유일하게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라고 극찬했다. 실제로 진 하를 처음 봤을 때 외모적으로 너무 작아서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 함께 연기를 맞춰봤을 때 '잘한다' 감탄했다. 진하가 나를 보며 연기 마스터라고 하는데 사실 연기는 마스터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늙은 배우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일생이 너무 힘들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진지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웃고 싶고 편안하게 작품에 임하고 싶다. 연기는 토론이 아니다. 그래서 진지함을 싫어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날 싫어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날 좋아하기도 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더불어 지난 '파친코' LA 월드프리미어 당시 여성 한복을 입고 레드카펫을 밟은 것에 "여성 한복을 입은 것에 특별한 의미가 깊지 않았다. 항상 어렸을 때부터 이벤트가 있을 때 왜 남자들은 똑같은 수트를 입어야 하나 의문이 있었다. 내가 좀 더 어른이 됐을 때 한복을 입고 싶었다. 정체성을 떠나 여성 한복이 너무 아름다워서 뉴욕에서 한복을 한 벌 빌려 입게 됐다. 가슴에 무궁화 자수도 놓았다"고 설명했다.
'파친코'는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 하, 박소희, 정인지, 미나미 카호, 안나 사웨이, 지미 심슨, 노상현, 정은채, 한준우, 전유나 등이 출연했다. 오는 25일 애플 TV+를 통해 전 세계 공개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애플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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