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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조선 후기에 탁월한 임금을 꼽자면 정조(1752~1800)가 아마 첫손에 들 것이다. 그는 노회한 정치인들과도 밀고 당기기를 잘했고, 학문의 성취도 깊었다. 정조가 이끈 태평성대에는 뛰어난 학자들이 즐비하게 나왔다. 아마 그중에서도 첫손을 꼽자면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일 터이다.
책에 따르면 정조는 늘 붕당(朋黨)을 경계했다.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책(蕩平策)을 이어받은 그는 힘의 균형을 맞추려 노론과 소론, 시파와 벽파를 넘나들며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조선 중기부터 이어온 붕당 정치의 폐해를 단번에 척결하긴 어려웠다.
정조는 '사람을 등용하는 방법이 치우치고 사사롭다면, 나라가 어찌 나라 꼴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바른 인재 등용에 관해 다산에게 넌지시 묻는다. 붕당 정치를 일소할 방법을 에둘러서 물어본 것이다. 다산은 그 뜻을 읽고 작심한 듯 답한다.
"붕당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임금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경쟁에서 결판을 내는 것은 힘입니다. 힘이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뒷받침해줄 지원 세력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후원자가 생기면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하나의 모임이나 집단이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당을 아끼는 마음은 후원을 바라는 데서 생기고, 응원을 바라는 마음은 힘을 합하려는 마음에서 나오며, 힘을 합하려는 마음은 먹을 것을 경쟁하는 데서 나오게 됩니다. 이런 점에 기초하여 인간 세상을 보면, 붕당이 발생한 연유는 나쁘기 그지없습니다. 정말 추합니다."
다산은 붕당 정치를 일소하기 위해선 그간 소외됐던 황해·평안·함경과 같은 서북지방 출신 등 다양한 지역에서 인재를 뽑고, 과거제뿐 아니라 다채로운 방식으로 인재를 등용할 것을 권한다. 또한 서자(庶子)에 대한 차별, 신분에 대한 차별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다산은 "신분이 낮거나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뛰어난 정치적 식견과 전략을 갖춘 이들이 있다"며 "지방이나 신분을 가리지 않고 훌륭한 인물을 중앙의 관리로 등용한다면, 임금님의 정치가 세상에서 바라는 뜻에 부응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런 정조와 다산의 정책 문답인 '책문'(策問)과 '대책'(對策)을 인사·경제·국방·교육·문화 등 주요 분야별로 정리했다. 그는 정조와 다산의 관계는 군주와 신하를 넘어, 문답을 통해 국가의 비전을 함께 설계해 나가는 정치적·지적 동반자였다고 설명한다.
316쪽.
buff27@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