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뉴로 시작해 레스터로 끝난 EPL 드라마(feat. 판 할)

기사입력 2016-05-18 18:37


ⓒAFPBBNews = News1

2015~2016시즌은 조제 무리뉴 감독으로 시작해 레스터시티로 끝이 났다. 제이미 바디(레스터시티)라는 신데렐라가 탄생했고, 루이스 판 할 감독은 끝까지 맨유를 지켰다.

폭발물 오인 소동으로 연기됐던 맨유와 본머스전(18일·한국시각)을 끝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었던 시즌이 끝이 났다. 그 어느때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드라마 같았던 시즌, 그 9개월을 되돌아봤다.

드라마의 초반은 '막장'이었다. 주연은 무리뉴 감독이었다. '디펜딩챔피언' 첼시는 개막전에서 스완지시티와 2대2로 비기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이 경기에서 사달이 났다. 부상한 에덴 아자르 치료를 두고 무리뉴 감독과 팀 닥터 에바 카네이로가 충돌했다. 온, 오프라인을 오가며 설전을 벌였다. 카네이로가 해고됐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 첼시는 부진을 반복하며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선수들도 태업에 가까운 플레이를 했다. 무리뉴 감독은 마지막까지 반전을 꿈꿨지만 결국 경질됐다. 첼시에서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같이 장기집권을 꿈꿨던 무리뉴 감독의 씁슬한 몰락이었다. 첼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을 구원투수로 기용하며 살아났지만, 이미 너무 많은 승점을 까먹은 뒤였다. 첼시는 10위에 머물며 역대 디펜딩챔피언 중 우승 다음 시즌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막장을 넘어서자 '반전'이 찾아왔다. 철옹성 같았던 '빅4'가 몰락했다. 지난 10년 이상 EPL은 맨유, 첼시, 아스널, 맨시티(넓게 리버풀까지) 빅4의 시대였다. 이들은 EPL을 넘어 유럽챔피언스리그까지 정복했다. 매시즌 빅4에 도전하는 세력들이 등장했지만 최종 성적표 맨 위 4자리는 항상 같은 이름이었다. 올 시즌 그 헤게모니가 깨졌다. 아스널이 2위에 올랐지만 그 어느때보다 우승가능성이 높았기에 만족할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첼시는 초반부터 추락을 거듭했고, 맨시티도 4위에 머물며 만수르 시대 이후 가장 나쁜 성적을 거뒀다. 맨유는 올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지만 5위로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판 할 감독의 거취는 시즌 내내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일단 올 시즌까지는 팀에 남았다. 판 할 감독은 최종전 후 "맨유와 계약기간을 지키고 싶다"며 잔류를 천명했지만 이 말을 한 날에도 '무리뉴 감독이 맨유에 부임할 수 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판이 뒤집히면서 흙 속의 진주들이 속속 '스타'로 떠올랐다. 바디와 리야드 마레즈는 인간승리의 주인공들이다. '공장 직원' 출신인 바디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7, 8부리그를 전전했다. 2011~2012시즌 레스터시티 유니폼을 입은 바디는 올 시즌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8월 29일 본머스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11월 29일 맨유전까지 11경기 연속으로 골을 집어넣으며 EPL 연속골 신기록을 세운 바디는 아쉽게 득점왕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무려 24골을 터트리며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잉글랜드 대표팀에 선발된 데 이어,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도 제작될 예정이다. 2014년 1월 단돈 50만 유로(약 6억5000만원)에 레스터시티 유니폼을 입었던 마레즈는 올 시즌 EPL 선수 중 유일하게 10-10클럽(19골-11도움)에 가입하며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과 PFA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 등 2관왕을 달성했다. 이제 마레즈를 영입하려면 최소 3000만유로(약 393억원)가 필요하다.

드라마의 마무리는 역시 '해피엔딩'이 제 맛이다. 레스터시티가 동화 같은 스토리를 썼다. 창단 132년만의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시즌 전 레스터시티의 우승 확률은 5000대1. 강등을 걱정하던 레스터시티는 승점 81점, 23승12무3패로 EPL 챔피언이 됐다. 단지 운으로 치부하기에 시즌 내내 레스터시티가 보여준 경기력은 대단했다. 만년 2인자로 '패배자'라는 놀림을 받았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은 지도자 인생 첫 1부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약팀 레스터시티에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함께 강팀들과 맞설 수 있는 전략과 전술을 심으며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레스터시티 선수들을 모두 합한 몸값은 6300만파운드(약 1053억원) 수준이다. 가레스 베일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이적료 1억 유로(약 1312억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개인이 아닌 팀의 무서움을 알려준 레스터시티의 우승은 '돈으로 우승을 사던' 축구계의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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