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포항은 3연패에 빠졌다. 기대했던 FA컵에서도 조기 탈락했고, 리그 성적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부상자는 넘쳤고, 외국인선수는 부진했다. 최순호 감독의 뒤를 이어 구원투수로 나선 김기동 감독에게 반등의 카드는 많지 않았다. 언제나 긍정적인 김 감독 조차 부임 초기 지인들에게 "내 축구인생은 항상 이렇게 어렵냐"고 속내를 털어놨을 정도.
김 감독은 '형님 리더십'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벤치에서 정장 대신 트레이닝복을 입었다. 선수들과 같이 뛰기 위해서다. 코치 시절부터 선수들과 쌓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팀을 하나로 묶었다. 전술적으로도 변화를 줬다. 이전까지 한 골에 그쳤던 김승대의 위치를 위로 올려 공격적으로 활용했다. 콘셉트 역시 점유 대신 속도에 초점을 맞춰 빠른 축구를 강조했다. 선수 기용에서도 유스 출신 2000년생 이수빈을 중용하는 등 과감한 선택으로 주목을 받았다.
곧바로 효과를 봤다. 부임 후 첫 경기였던 수원과의 9라운드 홈경기(1대0) 승리를 시작으로 4연승에 성공했다. 김 감독은 벤치에서 쉴새 없이 움직이며 많은 '짤'을 양산해냈다. '리액션 부자'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확 달라진 포항에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김 감독도 초보 답지 않은 지도력으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이내 승리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6월 강원 원정에서는 4-0으로 앞서다 4대5로 역전패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김 감독은 "아무리 내가 기록의 사나이지만 이런 기록까지는 원치 않았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4연패를 포함해 7경기 무승(3무4패)의 수렁에 빠졌다. 설상가상으로 김 감독식 축구의 핵심이었던 김승대가 전북으로 떠났다. "갈비뼈 하나를 잃은 느낌"이라고 할 정도로 상심이 큰 이적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이 과정에서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이적을 두고 고민하던 '후배' 김승대의 길을 열어줬다. 김승대 역시 팀을 떠나며 "내가 남긴 이적료로 김 감독님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김 감독은 여름이적시장에서 일류첸코, 팔로세비치 등 외국인선수 라인업을 바꾸며 반등의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9위까지 추락했다. 경기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과까지 가져오지 못했다. 김 감독은 두번째 승부수를 띄웠다. 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 중 한명인 최영준을 전북에서 임대로 데려오며 팀 컬러를 바꿨다. 좋은 모습을 보이던 이수빈을 과감히 제외하고, 대신 정재용을 최영준의 짝으로 내세웠다. 수비력이 좋은 두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내세우며 후방을 안정적으로 하는 축구로 변신했다.
김 감독의 변화는 또 다시 적중했다. 최근 4경기서 단 두 골만 내주는 짠물 수비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공격에서는 외국인 선수 완델손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김 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적재 적소마다 활용하며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포항은 최근 5경기서 4승1무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탔다. 그리고 24일 제주와의 31라운드에서 2대1로 승리했다.
리더십이 탁월하고 이론에 해박한 김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지도자로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포항에서 현역 마침표를 찍은 김 감독은 U-23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2016년 리우올림픽, 포항까지 코치로만 6년의 세월을 보냈다.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2-0으로 이기다 2대3으로 역전패를 해보기도 하고, 강등권까지 갔다가 살아남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은 김 감독은 위기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준비된 지도자' 김 감독을 앞세운 포항은 힘겨워 보였던 상위 스플릿 진출에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