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최근 1~2주간 국축(국내축구)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이정효 사가'의 최종 승자는 전통명가 수원 삼성이었다. 수원은 24일 공식 채널을 통해 이 감독 선임을 발표했다. 수원 구단은 "명확한 축구 철학, 탁월한 지도 능력, 그리고 선수 육성에 강점을 가진 이 신임감독이 구단의 재도약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해 선임했다고 밝혔다. 수원 구단에 따르면, 이 감독은 "최근 해외 구단을 비롯한 여러 K리그 구단으로부터 러브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수원 삼성이 보여준 구단의 진심, 간절함, 그리고 무엇보다 감독에 대한 깊은 존중에 큰 신뢰감을 갖게 되었으며, 구단의 진정성에 마음이 움직여" 수원행을 결정했다.
수원팬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수원 구단의 최근 수년간의 역사를 놓고 보면 '수원답지 않은' 결정, 수원 구단의 역사를 통틀어 보면 '수원다운' 결정으로 여겨진다. 수원은 최근 십수년간 수원 선수 출신인 '리얼 블루' 윤성효(2010~2012년), 서정원(2013~2018년), 이임생(2019~2020년), 박건하(2020~2022년), 염기훈(2024년) 등을 선임했다. 그중 성과를 낸 지도자는 K리그1 2회 준우승과 코리아컵 1회 우승을 일군 서 감독이 사실상 유일했다. 김병수(2023년), 변성환(2024~2025년) 감독은 '리얼 블루'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를 맛봤다. 2023시즌 K리그1 최하위(12위)를 기록하며 2부로 강등된 수원은 지난 두 시즌 연속 승격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와 동시에 변 전 감독은 물러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수원의 3번째 K리그2 시즌을 의미하는 '수원 삼수'라는 조롱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수원은 최근 4년간 K리그에서 가장 두드러진 지도력과 영향력을 자랑한 이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번 선임은 2013년 수원이 서 감독을 데려온 것 이상의 파격이라는 반응이다. 프로팀 창단 후 김호(1996~2003년), 차범근(2004~2010년) 등 검증된 빅네임의 장기 집권을 통해 성공의 역사를 쓴 수원은 2013년 당시 44세에 불과한 '초보 사령탑' 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겨 축구계를 놀라게 했다. 이 감독은 이름값 측면에선 김호 차범근 서정원에 크게 밀리지만, 2022~2025년 광주의 1부 승격, 광주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및 코리아컵 결승 진출 등의 굵직한 성과를 낸 지도력으로 오롯이 전북 현대, 울산 HD를 비롯해 일본 J1리그 구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임은 구단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가장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정효 쟁탈전에 참전한 수원이 '2부'라는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이 감독은 K리그1, 2를 통틀어 최고 연봉 대우와 4년 이상 계약기간, 10명 이상의 '이정효 사단' 선임, 두둑한 영입 자금 등을 약속받고 수원행을 결정했다"라고 했다. 프로 세계에서 '진정성'이란 곧 '조건'이다. 4년 이상의 계약기간은 단순히 2026시즌 수원팬의 염원하는 1부 승격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수원의 모기업 삼성 그룹의 선언과 다름없다. 광주의 황금기를 이끈 이 감독이 수원을 다시 K리그 리딩구단, 나아가 아시아 정상급 구단으로 올려놓을 거란 기대감이 반영됐다.
수원 삼성 인스타그램
수원은 이 감독 선임을 발표하기 전부터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기존 코치진과 스태프, 일부 선수들을 발빠르게 정리했다. 이기제 김민우 한호강 황석호 최영준 레오, 세라핌, 이규성 김상준 손호준 김정훈 문형진 등 선수 12명이 계약만료, 임대만료 등으로 빅버드와 작별했다. 이 감독은 이제 성공의 경험을 지닌 베테랑, 수원색이 강한 선수들, 신규 영입생들로 사실상 새로운 팀을 꾸려야 한다. 광주 시절을 돌아보면, 전방에서 많은 활동량과 파이팅으로 상대 수비와 싸워주는 장신 스트라이커, 중원과 파이널 서드에서 많은 움직임을 가져갈 미드필더 등을 새롭게 영입할 공산이 크다. 이 감독은 평소 FC안양 공격수 모따를 높게 평가했다. 수원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모따 영입에 뛰어들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파격적인 감독 선임에 어울리는 빅네임의 파격 영입도 기대해 볼만하다.
선수단 구성이 어느정도 완성되면, 이정효 전술색을 입혀야 한다. 안정적인 수비와 공간 활용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축구 철학이 확실하고, 선수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주입할 열정이 넘치는 만큼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 축구색 입히기가 끝날 가능성이 있다. 이 감독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아는 광주 시절 사단이 동행한다면, 시간은 더 단축될 수 있다.
광주와 수원은 구단 유니폼 색깔뿐 아니라 구단 규모 및 네임밸류, 선수단 연봉, 홈 관중수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르다. 이 감독의 광주가 늘 자이언트 킬링을 꿈꾸는 도전자였다면, 수원은 K리그2에서 매 경기 도전을 받는 챔피언이다. 이 감독이 부임한 만큼 다음시즌엔 '1강'으로 꼽힐 가능성이 크다. '1강'에 걸맞은 멘털리티를 주입하는 것도 이 감독이 풀어야 할 숙제다. 수원은 2025시즌 K리그2 우승팀 인천과의 맞대결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면서 결과적으로 다이렉트 승격을 놓쳤다.
수원은 현재 1, 2부를 통틀어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구단이 됐다. 대중의 관심을 즐기는 'K-무리뉴' 이 감독에겐 더할나위 없는 환경이다. 수원 구단이 선임 과정에서 진정성을 보였으니, 이젠 이 감독이 결과로 보답해야 할 차례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