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포츠조선 이현석 기자]우승 트로피만 K리그의 유일한 해피엔딩은 아니다. 2025년 영일만을 배경으로 펼쳐진 '태하드라마'는 멋진 결말이었다.
1년을 숨가쁘게 달려왔다. 아시아 무대를 병행한 포항 스틸러스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문을 열었고, 늦게 문을 닫았다. 11일 카야FC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2 경기를 끝으로 2025년 일정을 마쳤다. 하지만 감독의 시간은 끝나지 않는다. 다음 시즌 준비는 언제나 새해 맞이보다 먼저다. 최근 만난 박태하 포항 감독(57)은 "요즘은 휴식이 휴식 같지 않다. 선수들의 상황을 살펴야 한다. 미리 고민해야 하는 시간이다. 선수 이동도 많다 보니까, 차기 시즌 구상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포항은 '영원히 강하다'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K리그 전통의 강호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구단, 리그 내 업적도 대단하다. K리그1 우승만 5회, 코리아컵은 6회로 최다 우승이다. 박 감독은 포항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군 복무를 제외한 모든 선수 경력을 포항에서만 보낸 구단 최초의 '원클럽맨'이다. 경북 영덕이 고향이며, 포항에서만 30년 넘게 터를 잡았다. 자신을 '포항 촌놈'이라고 말한다.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옌벤 푸더(중국) 감독, 중국 여자 B대표팀, 한국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등을 거쳐 2024년 K리그 첫 사령탑으로 고향 포항 스틸러스를 택했다.
부임 첫 시즌이었던 2024년, 코리아컵 우승으로 포항의 강함을 증명했다. 두 번째 시즌에는 2년 연속 파이널A 진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진출 가능성까지 획득했다. 성과를 인정받은 박 감독은 지난 10월 포항과 3년 재계약으로 동행을 연장했다. 그는 "구단에서 좋게 봐줬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준 덕이다. 끝까지 잘 따라와 줬다"고 했다. 재계약의 의미는 단순히 성과에 대한 보답이 아니었다. 구단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나아갈 방향성을 갖춘 감독에 대한 신뢰였다.
양적 성장을 도모하는 K리그는 2026년 1부, 2부를 통틀어 29개 팀이 참가한다. 포항은 그 안에서도 돋보이는 문화, 환경을 갖춘 '명문'이다. 2025년 중반에 팀에 합류한 기성용도 끈끈한 선수단과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구단 환경을 칭찬했다. 박 감독은 선수와 팀의 성장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포항은)선수들이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프로 팀이라면 제대로 갖춰야 할 부분이다. K리그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훈련하고, 경쟁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질 좋은, 수준 높은 경기력을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했다.
환경, 그 다음은 태도였다. 2005년 포항 코치부터 지도자 생활만 20년을 넘겼다. 하지만 그는 선수를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훈련 태도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 깊다. 그는 "시합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해야 할 것들이 있다. 제일 먼저 즐겁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감독이 아닌 프로 선배로서, 성장하는 선수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 자기관리를 강조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뛰어난 선수들이 1순위로 꼽는 마음가짐이다. 박 감독은 "훈련장에 들어와서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프로 선수라면 관리는 필수다. 제일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고 했다.
좋은 환경, 태도 아래서 싹이 자라났다. 포항에 어울리는 육성 방식으로 팀을 장기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마련했다. K리그1 구단 중 연봉이 중하위권인 포항은 선수들의 성장이 원동력이다. 박 감독도 이에 발맞췄다. 어정원 홍윤상 이호재 등을 적재적소에 활용했고, 재능이 폭발했다. 김동진 강민준 한현서 등 유망주들도 적극 발굴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성장하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보람이다. 언제나 중심에는 선수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탄탄하게 구축된 전술과 시스템도 빛을 발했다. 2025시즌 초반 최하위까지 추락했던 포항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다. 변화도 주저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달라지는 전술에 부응했다. 박 감독은 "올해는 더 많이 변화를 줬다. 변화 없이는 버티기 쉽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과 극복했고, 자리를 직접 쟁취한 선수들도 있다"고 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도, 팀도 상승 곡선을 그렸다.
팬들의 힘도 빼놓지 않았다. 올해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홈 평균 관중 1만명을 달성했다. 박 감독은 "포항 팬들은 (우리가) 힘들 때 힘을 준다. 팬들의 역할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올해처럼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해서 우리가 함께 목표한 바를 이루는 것 그게 행복이 아닐까. 내 축구 철학이기도 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