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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 KPGA 부활에 프리미엄 주춧돌을 놓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7-09-26 07:39


KPGA 투어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자 김승혁. KPGA제공

그동안 국내 남자프로골프는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타 파워의 차이였다. 상대적으로 세계적 빅스타 탄생 빈도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동안 국내 여자골프투어는 월드 스타 탄생의 등용문이었다. 수많은 한국인 스타가 KLPGA를 거쳐 LPGA를 점령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남자프로골프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 사실. 하나의 요인으로만 설명하기 힘든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었다.

최경주(47)는 KPGA 투어 전반에 대해 "대회를 유치하는 목적이 선수를 육성하고 싶은 건지, 대회만 하고 트로피 전달하면 끝인 건지 잘 생각해야 한다"라는 쓴소리를 남겼다. 보완해야 할 점도 많고, 가야할 길도 멀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일단 최고를 향한 첫 걸음을 뗐다는 점이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를 놓치면 시간이 흐를수록 하류로 전락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때문이다. 온갖 좋은 건 죄다 1등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맨 앞서 달리는 자를 추월하기 힘든 이유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고와 최고 아닌 것과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마치 경주 트랙에서 인사이드를 차지하려는 싸움과 흡사하다. 판을 뒤집기 위해서 2등은 한번쯤은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세게 치고 나가 인사이드 트랙을 확보해야 한다. 그려려면 두배, 세배의 응축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시켜야 한다. 선두 탈환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1등 꽁무니만 쫓아갈 수는 없다. 이 소극적 전략은 얼핏 안전해 보이지만 실은 조직을 빠르게 퇴보시키는 지름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도는 '1등 vs 2등'이 아닌 '1등 vs 1등이 아닌 그룹'으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제네시스 챔피언십 대회장 정의선 부회장이 우승자 김승혁에게 트로피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현대자동차
KPGA가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투어로 거듭나겠다는 각오다. 실제 올 시즌 코리안투어는 19개 대회, 총상금 144억 5000만 원 규모로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50%쯤 커졌다. 4년 만에 코리안투어 총상금이 100억 원을 넘어선 데다 총상금 10억 원 이상 대회가 8개나 마련됐다. 화제의 코리안투어도 많아졌다.

그 부활의 중심에 대형 스폰서십이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24일 막을 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이다. 올해 처음으로 시작된 걸음마 대회. 하지만 스폰서인 현대자동차가 통 큰 판을 준비했다. 총 상금 15억 원은 국내 대회 최다상금 규모다. 우승 상금 3억 원도 국내를 대표한다는 한국오픈과 같은 금액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 출시 된 프리미엄 스포츠 세단 G70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정작 가장 탐나는 유혹은 두둑한 상금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PGA 투어 출전권이었다. 제네시스 우승자에게는 10월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PGA투어 'THE CJ CUP @ NINE BRIDGES' 출전권과 내년 미국 본토에서 열리는 PGA투어 '제네시스 오픈' 에 참가할 수 있는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파격적인 우승 프리미엄. 단숨에 판이 뒤집혔다. 큰 물을 찾아 집을 떠난 무림의 고수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PGA 1세대 최경주, 양용은를 비롯, 노승열, 최진호, 장이근 등 한국 남자 골프를 대표하는 별들이 대거 참석했다. 고참 최경주 양용은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며 대회 흥행카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화제도 풍성했다. 퍼펙트 우승자 김승혁(31)은 1라운드부터 코스레코드(-8, 64타)를 기록하며 와이어투와이어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국제규격에 맞게 세팅해놓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임을 감안하면 18언더파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김승혁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우승은 아기 덕분이었다"는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달 초 아빠가 된 그는 "압박감 속에 아내가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줬다. (그걸 보면서) 흐뭇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는 완벽한 우승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도 풍성했다. 화제만큼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4일간 약 2만 7000명의 갤러리가 모였다. 특히 일요일이었던 대회 마지막날에는 구름 같은 갤러리가 몰려와 축제 한마당을 이뤘다.

남자골프투어 부활의 희망을 안긴 제네시스 대회. 비하인드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의 스포츠 사랑과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정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세계 최강 양궁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세계 각국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최강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정 부회장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


제네시스 챔피언십 창설은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골프 중흥을 위한 정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1904년 이후 112년 만인 2016년 리우 대회에서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골프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전략적 판단도 한몫을 했다.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세계 최고를 향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목표 처럼 골프도 제네시스란 브랜드를 통해 PGA와 KPGA를 동조화 하겠다는 포석이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는 골프를 중심으로 한 문화, 미식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통한 가치 차별을 시도했다. 첫 술에 국내 최대를 넘어 최고 무대로 거듭난 제네시스 챔피언십. KPGA 흥행과 함께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강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성공적 대회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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