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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내 남자프로골프는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고'를 놓치면 시간이 흐를수록 하류로 전락한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 때문이다. 온갖 좋은 건 죄다 1등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맨 앞서 달리는 자를 추월하기 힘든 이유다. 시간이 흐를수록 최고와 최고 아닌 것과의 차이는 점점 커진다. 마치 경주 트랙에서 인사이드를 차지하려는 싸움과 흡사하다. 판을 뒤집기 위해서 2등은 한번쯤은 승부를 걸어야 한다. 세게 치고 나가 인사이드 트랙을 확보해야 한다. 그려려면 두배, 세배의 응축된 에너지를 한꺼번에 폭발시켜야 한다. 선두 탈환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렇다고 1등 꽁무니만 쫓아갈 수는 없다. 이 소극적 전략은 얼핏 안전해 보이지만 실은 조직을 빠르게 퇴보시키는 지름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구도는 '1등 vs 2등'이 아닌 '1등 vs 1등이 아닌 그룹'으로 양분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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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도 풍성했다. 퍼펙트 우승자 김승혁(31)은 1라운드부터 코스레코드(-8, 64타)를 기록하며 와이어투와이어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국제규격에 맞게 세팅해놓은 잭니클라우스 골프장임을 감안하면 18언더파는 놀라운 기록이었다. 김승혁은 우승을 확정지은 뒤 "우승은 아기 덕분이었다"는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달 초 아빠가 된 그는 "압박감 속에 아내가 아기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줬다. (그걸 보면서) 흐뭇함과 동시에 책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스토리가 있는 완벽한 우승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거리도 풍성했다. 화제만큼 대회는 대성공이었다. 4일간 약 2만 7000명의 갤러리가 모였다. 특히 일요일이었던 대회 마지막날에는 구름 같은 갤러리가 몰려와 축제 한마당을 이뤘다.
남자골프투어 부활의 희망을 안긴 제네시스 대회. 비하인드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의 스포츠 사랑과 전략적 판단이 있었다. 정 부회장은 대한양궁협회장으로 세계 최강 양궁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세계 각국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대한민국 양궁이 세계최강 지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정 부회장의 전폭적 지원이 있다.
제네시스 챔피언십 창설은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골프 중흥을 위한 정 부회장의 결단이 있었다. 1904년 이후 112년 만인 2016년 리우 대회에서 다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골프는 2020년 도쿄올림픽에 이어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전략적 판단도 한몫을 했다. 제네시스는 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세계 최고를 향한 현대자동차그룹의 목표 처럼 골프도 제네시스란 브랜드를 통해 PGA와 KPGA를 동조화 하겠다는 포석이다. 실제 이번 대회에서는 골프를 중심으로 한 문화, 미식 등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이미지 구축을 통한 가치 차별을 시도했다. 첫 술에 국내 최대를 넘어 최고 무대로 거듭난 제네시스 챔피언십. KPGA 흥행과 함께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 강화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 성공적 대회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