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품위있는 그녀, '골프여제'가 돌아왔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8-04-24 05:20


LOS ANGELES, CA - APRIL 22: Inbee Park of South Korea hits a tee shot on the 15th hole during the Hugel-JTBC LA Open at the Wilshire Country Club on April 22, 2018 in Los Angeles, California. Harry How/Getty Images/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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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응원하다 보면 샷 하나에 가슴졸일 때가 있다.

그 중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선수가 있다. '골프여제' 박인비(30)다. 떨리는 우승 경쟁 상황에서도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보는 사람도 덩달아 편해진다. 평소 루틴이나 스윙 밸런스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일관된 결과가 나온다.

'돌아온' 박인비가 골프여제의 품격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박인비는 23일(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휴젤-JTBC LA 오픈 최종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인 68타를 기록, 최종합계 10언더파 274타 공동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선두 그룹에 2타 뒤진 2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박인비는 전반을 버디2개, 보기1개로 마친 뒤 후반 버디 2개를 추가하며 타수를 줄였다. 특히 마지막 홀인 18번홀(파3, 170야드)에서 멋진 티샷으로 공을 홀 1m 가까이 붙이며 버디로 마치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3개 대회 연속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물러섰지만, 바꿔 말하면 박인비 만큼 꾸준하게 파트너를 바꿔가며 우승경쟁을 하고 있는 선수도 없다. 박인비는 이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페르닐라 린드베리(스웨덴)와의 연장 혈투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는 브룩 핸더슨(미국)과 선두 경쟁을 펼치다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LPGA 정상급 선수 중 가장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박인비는 이번 대회 준우승으로 펑샨샨(29·중국)을 끌어내리고 2015년 10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LOS ANGELES, CA - APRIL 22: Moriya Jutanugarn of Thailand reacts to birdie on the 15th green, in front of Inbee Park of South Korea and Jin Young Ko of South Korea, on her way to her first LPGA career win in the Hugel-JTBC LA Open at the Wilshire Country Club on April 22, 2018 in Los Angeles, California. Harry How/Getty Images/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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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랭킹 1위, "목표는 아니지만…"

세계랭킹 1위 복귀 소식에 대해 박인비는 담담했다. "세계랭킹 1위가 사실 올해의 목표는 아니었지만, 좋은 플레이에 대한 선물 같아 무척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격차가 별로 없어서 매주 순위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랭킹보다는 나의 골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잘치는 여성'이란 공인인증. 싫을 리가 없다. 다만 강조점이 뒤에 있는 미괄식일 뿐이다. 순위에 대한 집착이 '나의 골프를 하는데 방해가 돼서는 안된다'는 자기다짐인 셈이다. 지나간 골프와 다가올 골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바로 지금 이순간 현재의 샷에 집중하는 자세. 기복 없는 골프의 비결이다. 이번 대회에서 박인비 지은희와 동반 플레이를 했던 고진영은 "언니들은 스코어에 신경쓰지 않고 샷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이미 지난 홀에는 집착하지도 않고, 남은 홀은 미리 신경쓰지도 않는 그 모습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LOS ANGELES, CA - APRIL 22: Inbee Park of South Korea reacts to birdie on the seventh green during round four of the Hugel-JTBC Championship at the Wilshire Country Club on April 22, 2018 in Los Angeles, California. Harry How/Getty Images/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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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골, 그리고 워라밸

마음의 평정.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인비는 높은 산과 골을 통과해 왔다. '골든 그랜드슬래머'란 최고의 영예가 이름 석자 앞에 수식어로 붙었다. 명예의 전당에도 가입했다.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가 가장 두려워 해야 할 순간이다. 박인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름만 보고 달려왔던 골프인생. 오를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뿌듯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였다. 목표상실이란 허탈함, 자신과 사투를 벌이던 순간 부상이 찾아왔다. 허리가 아팠고, 손가락 통증이 찾아왔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박인비는 숙소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면서 일찌감치 시즌을 접어야 했다. 부상치료와 복귀를 준비하며 투어와 떨어진 생활을 하면서 박인비는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됐다. 남편 남기협씨, 반려견 리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인 골프와 삶의 조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9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 컵에서 1년 만에 우승을 한 뒤 박인비는 "30대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우승이다. 골프장 안팎에서 골프와 일상의 균형을 잘 유지한 덕분"이라며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비결로 꼽았다.


LOS ANGELES, CA - APRIL 22: Inbee Park of South Korea putts on the 17th green during the Hugel-JTBC LA Open at the Wilshire Country Club on April 22, 2018 in Los Angeles, California. Harry How/Getty Images/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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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팅의 달인'이 풀어야 할 마지막 퍼즐

변수가 많은 골프는 꾸준함이 가장 큰 미덕이다. 톱10 횟수가 중요한 이유다. 박인비 처럼 출전하는 거의 매 대회에서 우승경쟁을 하다보면 우승은 따라오게 돼 있다.

다만 한가지, 신경써야 할 점이 있다. 퍼팅이다. 사실 박인비는 '퍼팅의 달인'이었다. 남들보다 멀리 보내지 않지만 정확한 아이언샷과 컴퓨터 퍼팅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하지만 복귀 후 퍼팅이 예전같지 않다. 최근 3연속 우승 경쟁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 못한 것도 퍼팅 탓이었다. 급기야 이번 대회를 앞두고 퍼터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헤드가 큰 말렛형 퍼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까다로운 캘리포니아 그린에 '살짝' 발목을 잡혔다. 대회 첫날 28개였던 퍼팅 수가 남은 라운드에서 각각 32-32-31로 시즌 평균 29.05개를 넘었다.

"최근 두 달 정도 매우 좋은 골프를 하고 있다. 볼 스트라이킹이 좋았고, 일관성이 있었다"며 샷에 만족감을 표했던 박인비는 "그린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정말 나빴다. 퍼트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평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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