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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응원하다 보면 샷 하나에 가슴졸일 때가 있다.
3개 대회 연속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물러섰지만, 바꿔 말하면 박인비 만큼 꾸준하게 파트너를 바꿔가며 우승경쟁을 하고 있는 선수도 없다. 박인비는 이달 초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페르닐라 린드베리(스웨덴)와의 연장 혈투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직전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는 브룩 핸더슨(미국)과 선두 경쟁을 펼치다 공동 3위로 대회를 마쳤다. LPGA 정상급 선수 중 가장 안정된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는 박인비는 이번 대회 준우승으로 펑샨샨(29·중국)을 끌어내리고 2015년 10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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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평정.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인비는 높은 산과 골을 통과해 왔다. '골든 그랜드슬래머'란 최고의 영예가 이름 석자 앞에 수식어로 붙었다. 명예의 전당에도 가입했다. 가장 높은 곳에 섰을 때가 가장 두려워 해야 할 순간이다. 박인비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름만 보고 달려왔던 골프인생. 오를 곳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은 뿌듯함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공포였다. 목표상실이란 허탈함, 자신과 사투를 벌이던 순간 부상이 찾아왔다. 허리가 아팠고, 손가락 통증이 찾아왔다. 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박인비는 숙소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치면서 일찌감치 시즌을 접어야 했다. 부상치료와 복귀를 준비하며 투어와 떨어진 생활을 하면서 박인비는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 됐다. 남편 남기협씨, 반려견 리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인 골프와 삶의 조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9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 컵에서 1년 만에 우승을 한 뒤 박인비는 "30대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우승이다. 골프장 안팎에서 골프와 일상의 균형을 잘 유지한 덕분"이라며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을 비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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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많은 골프는 꾸준함이 가장 큰 미덕이다. 톱10 횟수가 중요한 이유다. 박인비 처럼 출전하는 거의 매 대회에서 우승경쟁을 하다보면 우승은 따라오게 돼 있다.
다만 한가지, 신경써야 할 점이 있다. 퍼팅이다. 사실 박인비는 '퍼팅의 달인'이었다. 남들보다 멀리 보내지 않지만 정확한 아이언샷과 컴퓨터 퍼팅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하지만 복귀 후 퍼팅이 예전같지 않다. 최근 3연속 우승 경쟁에서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 못한 것도 퍼팅 탓이었다. 급기야 이번 대회를 앞두고 퍼터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헤드가 큰 말렛형 퍼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까다로운 캘리포니아 그린에 '살짝' 발목을 잡혔다. 대회 첫날 28개였던 퍼팅 수가 남은 라운드에서 각각 32-32-31로 시즌 평균 29.05개를 넘었다.
"최근 두 달 정도 매우 좋은 골프를 하고 있다. 볼 스트라이킹이 좋았고, 일관성이 있었다"며 샷에 만족감을 표했던 박인비는 "그린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어떤 날은 잘 되고, 어떤 날은 정말 나빴다. 퍼트는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평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