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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워치] 트럼프 관세정책은 '제2의 플라자합의'인가(종합)

기사입력 2025-07-31 08:52

(서울=연합뉴스) 한-미 통상협의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 중인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및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미국 상무부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2025.7.30 [기획재정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플라자 합의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소재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들이 각국 환율에 관해 이룬 합의를 말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를 절하시키는 대신 여타국 통화를 절상해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하는 내용이다. 플라자 합의 이후 2년여에 걸쳐 달러 가치는 50%가량 하락했고, 일본은 저금리로 거품을 키워 결국 장기 불황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다.

플라자 합의는 결국 대규모 무역·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적자를 줄이려 했던 시도였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일본과 독일 등에 강요해 희생을 요구하고 실익을 챙긴 것이다. 글로벌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이 불리한 상황이 이어질 때 기존의 협정 등을 무시하고 새 요구조건으로 상대국의 희생을 강요하며 판을 바꿔왔던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고 트럼프가 처음도 아니다.

최근 한 증권사는 보고서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제2의 플라자 합의'와 같다고 분석했다. 환율에서 관세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들고나와 합의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관세 전쟁과 플라자 합의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영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유럽연합(EU) 등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한 여타국의 조건을 보면 대미 수출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받는 것뿐 아니라 시장 개방, 대미 투자 확대, 미국제품 구매 확대 등을 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내용의 일방적인 승리다.



작년 10월부터 지난 6월까지 미국의 관세수입은 총 1천133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고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올해 관세수입이 3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교역상대국의 시장 개방과 막대한 대미 투자로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고 자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그동안 관세정책의 역효과로 우려됐던 경기 침체나 물가 상승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2분기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은 3.0%(연율)에 달했으니 트럼프로서는 만족스러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관세 협상 국면이 마무리된다고 해서 무역 전쟁이 끝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국, 캐나다, 인도 등은 아직 협상을 타결짓지 못한 데다 미국이 반도체나 의약품 외에도 다른 품목을 지명해 관세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또 이번엔 관세 대신 환율을 들고나와 직접적으로 달러 절하와 상대국 통화 절상을 요구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란 공습으로 무력을 과시한 뒤 후퇴(TACO·Trump always chickens out)에서 강공으로 돌아선 트럼프가 앞으로 또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걱정이 남는다. 그러니 트럼프 시대의 국제질서, 특히 무역 질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안의 연속일 뿐이다.



한국도 유예시한 막판에 30일(현지시간) 미국과 합의를 이뤘다. 한국이 미국에 3천500억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고 1천억달러 규모의 미국 에너지를 구매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 수출품에 물리는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이제 합의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4%를 넘는 만큼 수출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 경제의 보루다. 따라서 우리와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 등과 같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대가로 큰 액수를 투자하고 우리 시장도 열어야 한다. 미국이 부과할 관세로 커지는 기업들의 부담과 추가 개방된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부담이라면 피해를 줄일 후속대책에 집중하는 게 맞다.

hoonkim@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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