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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잘싸'.
스포츠팬도 대승적으로 변했다. 메달보다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아깝게 졌거나 경기 중 실수를 한 선수들을 격려하는 댓글이 관련 기사에 줄줄이 달리고 있다. '은메달이라 안타깝다'는 기사에는 '은메달도 대단하다, 자랑스럽다'는 반박 댓글이 이어진다. '기대주 줄줄이 예선탈락' 류의 기사에도 '잘했다', '괜찮다', '장하다'는 댓글이 대다수다. 아시아 선수 첫 올림픽 리듬체조 메달을 기대했던 손연재가 4위로 경기를 마감한 뒤 '그동안 고마웠다', '수고했다'는 격려가 줄을 이었다. 동메달을 놓치고 "죄송하다"는 털보 레슬러 류한수에게는 '최선 다했는데 왜 사과하나', '아름다운 4위'라는 위로가 이어졌다. 28년만에 '노메달'을 기록한 한국 탁구에 대해서도 정영식의 투지를 칭찬하는 댓글이 주를 이룬다. 이는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결과보다 과정', '비난보다 격려'라는 트렌드가 완전히 자리잡았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스포츠맨십'과 관전 문화 성숙의 밑바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 전체의 트렌드 변화가 깔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패배한 선수도 칭찬하는' 스포츠팬들의 변화에 대해,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인이 국가대표 선수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경기 결과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심리가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나친 감정이입으로 흥분하거나 패배한 선수를 비판하는 경향은 확실히 줄었다"면서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감과 여유가 생기면서 다양한 가치에 대해 성숙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대한민국이 성장 지상주의의 깃발 아래 '헝그리 정신'을 앞세우고 일렬 종대로 달리던 단일 목표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를 중시하는 다원화된 사회로 진화한 것이 올림픽 응원 문화에 투영됐다는 설명이다.
한편으로는 '3포세대' '흙수저'로 상징되는 젊은 층의 좌절감이 '결과에 관대한 응원'에 일부분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금메달에 집착하지 않는' 분위기가 올림픽 응원 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지면 자칫 '집단 무기력증'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있다. 이런 다각도의 해석을 아우르면, 2016년 한국 사회의 명과 암이 두루 반영돼 리우올림픽 '졌잘싸' 트렌드가 만들어진 것이며, 이런 트렌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인 것이다.
다시 리우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눈을 돌려 보면, 이번 올림픽에는 김연아처럼 전국민이 반드시 금메달을 따기를 바라는 '압도적 스타'가 없는 것도 관대해진 응원 트렌드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곽금주 교수는 "이번 올림픽은 다양한 종목의 여러 선수에게 시선이 분산돼 있다"며 "김연아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빅 스타는 국민의 기대를 못 맞추면 '거국적인 아쉬움'을 일으키지만, 리우 선수단에는 그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선수는 없어서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효자 종목'들이 메달을 놓치면서 '금메달 10개'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이나 스포츠팬들은 메달보다 선수들의 스토리, 즉 도전하는 과정과 내용에 더 주목한다. 과거 '헝그리 정신' 시대의 영웅이 초능력을 발휘하는 슈퍼맨이었다면, 오늘 우리 사회의 영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옆집 청년인 것이다. 그 청년은 동시에 바로 자기자신이기도 하다. 관대하고 따뜻한 '졌잘싸' 응원이 '옆집 청년'인 국가대표 선수들, 또 그들의 이웃이기도 한 국민 모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있다.
김소형기자 compact@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