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사극 '해를 품은 달'에서 호위무사인 운검 김제운은 24시간 왕의 곁을 지킨다. 그림자처럼 붙어 있기에 '합방 때도 함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도 호위무사 무휼이 왕의 옆을 떠나지 않았다. 이같은 사극은 진실이 아닌 픽션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임금의 호위무사인 운검이 존재했을까. 또 몇 명이나 있었을까. 호위무사가 취침시간에도 근무했을까. 이같은 궁금증은 최근 출간된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이상주 지음, 다음생각 발행)'에서 풀 수 있다.
정조가 종묘제례를 위해 행차할 때 장면이 나온다. 정조는 호위무사인 별운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대궐을 떠나 종묘에 도착했다. 호위무사인 별운검들이 근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별운검(別雲劍)은 임금이 행차할 때 바로 곁에서 호위하는 특별 선발된 무관이다. 이들은 운검을 패용하고 있어 운검이나 별운검으로 불린다. 임금의 안위를 최측근에서 책임질 호위 무관인 이들은 2~4명이 교대로 근무를 한다.
정조는 2년(1778년) 7월 16일 종묘에 행차했다. 그러나 별운검인 홍낙성, 정호인, 오재순이 사사로운 일과 병을 핑계로 임금을 호위하지 않았다. 정조가 즉위 직후에는 힘이 약했기 때문이다.
정조가 종묘의 이상 유무를 살피는 봉심을 하는 순간에 군사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별운검의 호위 거부로 체통에 씻을 수 없는 금이 간 정조에게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임금의 행차 때는 주변에서 숨소리 하나 들려서는 안 된다. 더욱이 경건해야 할 종묘에서 임금이 봉심을 하는데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불충이다.
큰 소리는 경호책임자인 훈련대장 산하의 대열에서 나왔다. 하지만 정조는 훈련대장을 처벌하지 못한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넘어간다. 와신상담하던 정조는 훈련대장을 10년 후에 죽였다.
'왕의 영혼, 조선의 비밀을 말하다'는 조선 임금이 죽은 뒤 영혼이 가는 신'들의 정원' 종묘에 얽힌 다양한 스토리를 다뤘다.
세종의 정치도 흥미롭다. 성군 세종은 아버지 태종의 정통성을 위해 큰아버지 정종을 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 비정한 모습을 보였다. 임금은 승하하면 3년상을 치른뒤 종묘에 모셔진다. 이 때 묘호를 받는다. 태조, 세종, 성종, 영조와 같은 이름이다. 그러나 세종은 정종에게 '기생군주'라며 묘호를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군주와는 다르게 묘호없이 공정대왕으로만 불렸다.
그러나 신하에게는 따뜻한 감성을 보였다. 종묘대제 때 실족하며 술잔을 떨어뜨린 제관 허조를 책망하는 대신 '종묘 정전의 계단을 넓히라'고 지시했다. 당시 세종은 29세였고, 허조는 57세였다. 세종은 따뜻한 감성으로 서른네 살이나 연상인 황희, 서른일곱 살이 많은 맹사성 등 노련한 원로 정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치의 현장인 종묘에서는 신하들이 왕을 허수아비로 만드는 사건도 종종 있었다.
영조 21년(1745년) 4월 7일 종묘에서 제례에 쓸 희생(犧牲)인 소를 살폈다. 임금이 희생을 살피는 자리에 나아가 남향(南向)을 했다. 이윽고 희생을 관장하는 장생령(掌牲令)이 일행과 함께 희생을 이끌고 동쪽에 나와 섰다.
그는 손을 들어 '소가 살졌다'고 고한 뒤 자리로 돌아갔다. 여러 대축관이 각각 순행하여 희생을 살펴보았다. 모두가 '충실하다'고 고했다. 영조는 버럭 화를 냈다. 비루한 소를 모두가 살졌다고 했기 때문이다.
또 효종은 청나라가 준 시호를 종묘에 적용하지 않으면서 북벌의지를 은밀하게 밝힌다. 그 뜻을 받든 영의정 이경여 가문에 구전돼온 북벌 비화도 읽을거리다.
종묘에는 황제국의 정신도 숨쉰다. 명나라의 눈치를 볼 필요 없다는 태종의 호연지기가 묻어있다. 종묘의 신령에 혼비백산한 왜군, 종묘의 제례에 쓸 동물을 음악속에 희생하는 의식, 임금이 싼 막걸리를 조상께 올리는 내용도 흥미롭다.
미스터리도 있다. 조선 왕실 사당에 고려왕인 공민왕이 모셔진 게 그 예다. 원명 교체기의 대륙 정세를 이용해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등 많은 개혁을 한 공민왕은 언제부터, 왜 조선군주들의 사당에 모셔졌을까.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어 더욱 신비로울 뿐이다.
친일파 이완용이 어떻게 신성한 종묘에 배향되었는가도 의문이다. 황제를 협박하고 나라를 일본에 넘긴 이완용은 상식적으로 절대 배향공신이 될 수 없었지만, 일제의 통치가 이미 너무나 많이 진행돼 반대할 인사가 없었다. 그 틈을 타 이완용의 신주는 은근슬쩍 종묘에 안치된다. 이 사건은 망국이 되어버린 조선의 일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안타까운 예다.
도성에 불이 나면 종묘가 진화 1순위가 된 사연, 임금도 가지 못하는 길, 종(宗)보다 조(祖)로 호칭되기를 바라는 왕들의 염원, 종묘에서 반성문을 쓴 양녕대군, 한국에서 가장 긴 117자의 이름을 가진 임금, 종묘에서 쫓겨난 왕후들도 흥미를 더하는 이야기들이다. 종묘에 관한 21가지 궁금증 풀이와 종묘를 전반적으로 안내하는 종묘 둘러보기도 스토리로 잘 구성돼 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 정신이 어우러진 '종묘'는 조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차별화 된 교양 역사서인 이 책을 통해 조선 시대의 전반을 쉽고도 새로운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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