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소중한 게 있나요."
선수 출신이라면 감독이라는 직위는 누구나 탐을 낼 만한 자리다.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국가대표팀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꿈같은 제안을 마다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스포츠 스타가 있다. 한국 남자 배드민턴의 간판이었던 김동문(37)이다.
김동문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혼합복식과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한 셔틀콕 황제였다.
그런 그가 오는 3월 신학기부터 모교인 원광대에서 강단에 선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스포츠과학부 사회체육학 전공 전임교수직을 맡게 됐다.
김동문은 '셔틀콕 여왕'이었던 라경민 대교눈높이 감독(36)의 남편이기도 해 유명하다. 경기도 구리에 살고 있는 아내-두 자녀와 떨어져 전북 익산 생화을 해야 한다.
김동문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올해 초 귀를 솔깃하게 하는 제안을 받았다. 캐나다국가대표팀과 국내 실업팀으로부터 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배드민턴 약소국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캐나다의 '러브콜'이 더 강했다. 작년까지 6년간 캐나다에서 유학을 하면서 코치직을 맡아 본 경험도 있는 터라 현지 적응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김동문은 고민 끝에 모교를 선택했다. 김동문은 "오래 전부터 꿈꿔온 스승의 길을 걷고 싶었다"면서 "그것도 다른 학교가 아닌 고향에 있는 원광대여서 모교를 위해 봉사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들은 서로 하고 싶어 안달인 국가대표 감독의 자리를 뿌리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자신이 큰 선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 준 원광대와의 의리가 더 소중했던 것이다.
사실 김동문은 준비된 교수였다. 2개의 올림픽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세계 배드민턴 역대 최다 국제대회 76차례 우승, 14개 대회 연속우승, BWF(세계배드민턴연맹) 명예의 전당 헌액(2009년) 등 선수로서 뛰어난 족적을 남겼다.
그런 와중에도 틈틈이 주경야독을 하며 원광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통과했다. 김동문이 박사학위를 받은 게 2005년이고, 현역에서 은퇴를 한 시기가 2004년. 세계 최고의 선수생활을 하면서도 스승의 꿈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것이다.
원광대 개교(1946년) 이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교수가 된 김동문은 "20여년에 걸친 선수생활과 6년 동안의 캐나다 유학을 통해 습득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후학 양성에도 성공하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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