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야구 선수들과 모자에 얽힌 이야기를 해볼까요.
선수와 모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가끔씩 중계화면 가득히 선수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 모자에 시선이 향하게 되더라고요. 바로 그 모자에 선수들이 마음이 숨겨져 있기 때문인데요. 암호 같은 숫자나 이니셜 그리고 하트나 별과 같은 다양한 문양들. 선수들의 희망과 소망은 그런 형태로 모자에 담겨 있습니다.
얼마 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넥센 투수 강윤구는 모자 안쪽에 커다랗게 '야구왕'이라고 써놨더군요. 야구를 최고로 잘하는 '왕'이 되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선수들과 선 채로 인터뷰를 하면 눈높이 때문에(저보다 작은 선수는 별로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선수들이 쓴 모자챙 안쪽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모자에 담긴 선수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기회라고나 할까요. 자, 이제부터 여러분이 궁금해하실 선수들의 모자에 담긴 비밀을 풀어드리죠.
우선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모자챙 안쪽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힘든 훈련 도중 모자를 벗었을 때 쓰인 글귀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대부분 각자의 종교를 나타내는 표시가 많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두산 투수 이용찬의 모자챙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 한 분이 계신답니다.
그런가하면 지난해 대부분 SK 선수들은 모자에 '일구이무(一球二無)'라는 사자성어를 써 놓았습니다. 김성근 전 감독이 강조하던 '공 하나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스며들어 있던 풍경입니다.
또, 큰 경기를 앞둔 선수일수록 조금 색다른 문구를 쓰기도 하는데요. 2005년 한국시리즈를 앞둔 삼성 선발 배영수는 모자챙에 '뱀탕에 뱀 열다섯 마리'라는 기상천외한 문구를 써넣어 스스로에게 기를 불어 넣기도 했답니다. 같은 팀 안지만은 2010 아시안게임 당시, 친한 형님의 음식점 제목을 크게 써넣어 간접광고를 해준 적도 있죠. 지난해 투수 부문 4관왕을 차지한 KIA 윤석민은 포스트시즌이 시작되자 모자에 커다란 별 네 개를 그렸습니다. 무슨 의미일까 추측들이 많았는데요, 윤석민 본인이 "지금까지 제가 우승해본 횟수"라고 밝히면서 "유럽 챔피언스리그 축구를 보다가 생각난 아이디어"라고 하더군요. 또 우승을 하고 싶다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모자챙 안쪽에 선수들의 속마음이 담긴다면, 모자 바깥쪽에는 팀 전체적인 차원의 소망이 담기게 됩니다. 부상을 당해서 함께 뛰지 못하는 선수들의 등번호나 통산 우승횟수와 같은 것이 주로 쓰이죠.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KIA 선수들의 모자 옆쪽에는 11번째 우승을 의미하는 'V11'과 함께 'DJ87'이라는 문구가 생겨났습니다. 바로 2010 시즌 도중에 갑자기 쓰러져 투병중인 김동재 코치의 이니셜과 등번호인데요, 코치님의 쾌유를 비는 전 KIA 선수들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야구모자는 때때로 선수들의 마음이 담기는 스케치북이 되기도 합니다. 스프링캠프에서 새롭게 지급받은 모자에 과연 어떤 문구를 써 넣을지 고민하는 선수들을 지켜보니, 새삼스레 시즌 개막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지네요. 여러분도 이제 선수들의 얼굴보다 모자에 시선을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MBC 스포츠+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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