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대구 경기. 3-0 리드하던 8회말 2사 1루에 등판한 LG 한 희는 거의 직구로만 승부했다. 첫 타자 진갑용에게 볼넷을 허용해 2사 1,2루. 삼성 벤치는 힘 있는 조동찬을 대타로 냈다. 홈런 한방이면 단숨에 동점이 되는 순간. 하지만 한 희는 조동찬을 상대로 직구만 던졌다.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정도로 뚝심있는 승부. 결과가 좋았다. 삼진으로 이닝 종료.
한 희 뿐 아니다. 유원상 등 LG의 젊은 불펜진의 직구 비율이 부쩍 높아졌다. 왜 그럴까. 이유가 있었다.
13일 KIA전을 준비 중이던 LG 김기태 감독의 설명.
"사실입니다. 맞더라도 직구 위주로 가라고 했어요. 특히 한 희는 직구의 힘이 좋아요. 낮게 제구도 되고…. 마무리 같은 개념으로 1이닝만 막는다고 생각하고 자신있게 던지라고 했어요. 좋은 공을 많이 던져가면서 자신감을 가져야죠. 물론 이런 거(손동작으로 오른쪽, 왼쪽으로 휘는 변화구 표시를 했다)를 섞으면 범타 확률이 조금 높아지겠죠. 하지만 상대 팀 타자들에게 시즌 초반에 우리 불펜진의 힘이 충분히 강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기 별로 볼 배합을 조금씩 바꿔가야 하겠지만…"
말하자면 이런거다. 좌타자라고 컨디션 좋지 않은 왼손 불펜 투수를 올리는 것 보다는 오른손 투수라도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기용하는 역발상. 직구 힘이 있는 투수라면 자신 없는 어정쩡한 변화구를 섞다보면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고 자칫 좋은 흐름의 직구 밸런스마저 흐트러질 수 있다. 김기태 감독의 '초보'답지 않은 승부사적 기질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대목.
야구는 대표적 심리 스포츠. 기싸움에서 밀리면 끝이다. 탐색전이 한창인 시즌 초라면 말할 것도 없다. 가뜩이나 LG는 오프 시즌 주요 FA 선수들과 박현준 김성현의 이탈 등 온갖 악재 속에 시즌 전 '꼴찌 후보'로 꼽히던 팀. '첫 만남부터 호구 잡히면 시즌 내내 고생한다'는 인식이 또렷하다.
김 감독은 "류택현, 이상열 등 베테랑만 빼고는 불펜 투수들에게 직구 위주의 피칭을 주문했다"고 했다. 마지막 한마디. "오승환이 나오면 타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도하지 않느냐.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한 희를 필두로 한 LG 불펜진의 이유있는 직구 승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잠실=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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