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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킬러' 선동열도 '거인 포비아' 못막았다

by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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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롯데 선수들은 붉은 상의, 검정 바지를 입은 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니, 그가 덕아웃에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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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18번의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그 주인공이었다. 150㎞를 넘는 강속구에 칼날같이 휘어 들어오는 슬라이더. 모두가 두려워하던 절대강자 선동열. 모든 팀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투수였지만 '선동열 포비아'는 다른 어떤 팀보다 거인군단에 더더욱 또렷이 새겨졌다.

한창 때 선동열이 롯데를 만나면 그날 경기는 볼 필요도 없었다.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그 시절, 호남을 대표하는 스타로서 자존심을 걸고 던져서였을까. 88년 8월 11일 롯데전 승리를 챙긴 이후 선동열은 롯데만 만나면 파티를 벌였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입단을 앞둔 95년 9월 26일까지 롯데를 상대로 쌓은 승수가 무려 20개였다. 그것도 쉼표없이 20번을 내리 이겼다. 선 감독의 롯데전 20연승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특정팀 상대 연승 기록으로 프로야구 연감에 뚜렷이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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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역 시절 롯데에 저승사자였던 그가 2012년, 거꾸로 '거인 포비아'에 짓눌려 있다. 감독으로 호랑이 유니폼을 입은 후 처음으로 롯데를 만났다. 이날 경기 전까지 KIA는 롯데전 8연패를 당하고 있었다. 현재 유일하게 이어지고 있는 특정팀 상대 연패 기록이다. 롯데에 질린 수많은 KIA 팬들은 고향에 돌아온 선 감독이 '거인 부적'으로서 팀의 연패를 끊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을 터. 하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팀 타율 1위의 롯데 타선에 홈런 2개 포함, 장단 16안타를 허용하며 11점을 내줬다. 투수들도 투수들이었지만 타선을 보면 더욱 한숨이 나왔다. 안타 11개, 볼넷 13개를 얻어냈지만 KIA가 얻은 득점은 7점에 그쳤다. 그나마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선수들이 안타 4개와 볼넷 1개를 얻어내며 끝까지 롯데 마운드를 괴롭히는 장면에서는 소득이 있었다. 하지만 경기 내내 결정적인 순간 병살타가 나오는 등 공격에서 집중력을 살리지 못하는 모습에 선 감독은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선 감독은 경기 후 "좋은 공을 가지고도 자기 공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들, 무수한 찬스를 날려버린 타자들 모두 안타깝다"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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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롯데는 선동열에 눌려 울던 그때의 롯데가 아니었다. 진짜 거인처럼 너무 커보였다. 선 감독은 승부를 뒤집어보기 위해 일찍부터 선수를 교체하는 등 안간힘을 써봤지만 롯데의 불붙은 방망이를 식힐 수는 없었다. 5-6으로 따라가던 6회초, 이날 경기를 앞두고 1군에 올린 투수 임준혁이 어이없는 폭투를 2개 연속 저지르며 승부의 추가 롯데로 넘어가는 순간, 선 감독은 직접 마운드에 올라 롯데 타자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을까.

또 하나 배아픈 건 연패가 이어진 것 뿐 아니라 남의 잔치에 밥상을 차려줬다는 점이다. 롯데는 이날 SK가 LG에 덜미를 잡히면서 단독 1위에 올라섰다. 그냥 1위가 아니다. 지난 2008년 4월19일 목동 히어로즈(넥센 전신)전에서 단독 1위에 올라 '1일 천하'를 맛본 후 무려 1462일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은 단독 1위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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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KIA의 롯데전 연패가 앞으로 더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롯데 타선의 최근 기세는 못말릴 정도로 무섭다. 반면, KIA는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엔트리를 구성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22일 최근 최고의 페이스를 보이고 있는 윤석민이 등판 예정이지만 재작년 홍성흔과 조성환의 머리를 맞힌 후 작년엔 롯데전에 딱 1게임만 나왔을 정도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따라서 롯데 타선을 상대로 제 공을 던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니 천하의 선 감독에게도 주말 광주의 비 예보는 반가울 수 밖에 없다.

광주=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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