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두산 김진욱 감독이 3일 삼성전 패배후 한 말이다. 이날 두산은 0-0이던 5회말 선발 임태훈이 갑작스러운 난조로 난타를 당한데 이어 불펜투수들도 부진을 보여 한꺼번에 6점을 주며 결국 0대10으로 패했다. 경기후 김 감독의 코멘트가 화제가 되고 있다. 김 감독은 "오늘 선수들이 열심히 했는데 내가 경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같다. 태훈이의 교체는 명백한 나의 실수다. 경기중에 생각이 많아 올라갈 타임을 착각했다. 마지막까지 벤치 분위기도 그렇고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5회말 수비때 임태훈이 선두 6번 채태인과 7번 조영훈에게 연속 안타를 맞자 정명원 투수코치가 먼저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런데 임태훈이 2번 박한이에게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자 김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갔다. 임태훈의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규칙상 투수를 바꿔야 하는 상황. 야구규칙 8.06조 (b)는 '감독이나 코치가 한 회에 동일투수에게 두 번째 가게 되면 그 투수는 자동적으로 경기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감독은 정 코치가 앞서 마운드를 방문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두산 불펜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서동환과 정대현이 서둘러 몸을 풀었다. 그러나 즉시 누군가는 임태훈의 공을 이어받아야 했다. 서동환이 마운드에 올랐다. 서동환은 3번 박석민 타석에서 1루 견제구를 3~4차례 뿌리며 마저 몸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서동환은 4타자를 상대해 안타 1개, 볼넷 2개를 내주며 추가 실점을 했다. 두산이 완전히 승기를 빼앗긴 시점이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찬물', '실수', '착각' 등 강도 높은 반성의 의미가 담긴 표현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다소 의외였다. 패배의 책임을 인정하는 감독들은 그동안 수없이 많았지만, 이날 김 감독처럼 언론을 향해 '통렬한 자아비판'을 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못해서 졌다", "선수들은 열심히 했다" 등의 표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임태훈에게 다가간 후 투수 교체 타임을 착각했음을 깨달은 김 감독의 표정은 무척 당황스러워 보였다. 강광회 구심으로부터 설명을 듣고는 임태훈에게 "미안하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나중에 나온 얘기지만 김 감독은 정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간 게 3회라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감독이 팬들과 선수들을 향해 반성의 언행을 한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감독으로서의 권위가 깨지고 선수들로부터 불신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우선 선수들이 패배의 부담을 벗어던지고 다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감독이 잘못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감독-선수간 의사소통의 기회가 더욱 많아지게 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커진다. 두산의 한 선수는 "감독님의 특징을 한 마디로 얘기하자면 '인자함'이다. 선수들에게 군림하려 하지 않고 수평적 관계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 하신다"고 했다.
이날 경기전 김 감독은 덕아웃에서 3년차 투수 정대현을 부르더니 "어제(2일)는 던질 때 기합소리가 안들리더라? 그러니까 공이 안 나가지"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대현은 마운드에서 공을 릴리스하는 순간 "윽" 소리를 크게 내는데 2일 삼성전에서는 김 감독이 잘 듣지 못했던 것이다. 쑥스럽게 웃기만 하던 정대현은 "오늘은 들릴 겁니다"라고 한 뒤 자리를 떠났다. 감독-선수간의 일상적인 대화와 이해. 감독의 자기 반성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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