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히팅 사인이었는데 번트를 대더라고."
지난 9일 목동구장. LG와 넥센의 시즌 네번째 경기에서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1-1로 팽팽하던 3회초, LG는 선두타자 이진영의 2루타로 무사 2루 찬스를 맞았다. 다음타자는 최동수. 최동수는 초구부터 3루 방향으로 번트를 댔다. 이진영은 안전히 3루까지 도달했고, 최동수는 1루에서 아웃됐다.
이렇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희생번트 상황이었다. 하지만 덕아웃에 있던 김기태 감독은 타구가 굴러갈 때부터 깜짝 놀랐다. 최동수가 덕아웃에 들어온 뒤에도 한참 동안 시끌벅적했다. 팀내 최고참 최동수의 번트를 두고 많은 말이 오갔다. 무슨 이유였을까.
10일 경기를 앞두고 만난 김 감독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분명한 히팅 사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번트를 대더라"고 말했다. 작전을 어긴 대가는 달콤했다. 김 감독은 기록을 맡고 있던 직접 운영팀 성민호씨에게 "공식 기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꼭 희생번트로 표시해달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기습번트로 기록돼 연봉고과에서 이득을 보지 못할까봐 배려한 것이었다. 무사였기에 다행히 김 감독의 바람대로 희생번트로 기록됐다.
당사자는 어떤 생각으로 작전을 어긴 채 번트를 댔을까. 경기 전 만난 최동수는 "3루수의 수비 위치가 뒤에 있더라. 번트를 잘만 대면 1루에서 살 줄 알았다. 근데 된통 맞아서 타구가 세게 가버렸네"라며 웃었다. 희생번트가 아니고, 기습번트였다. 그래도 주자를 2루에 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플레이다.
김 감독은 "후배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지 않나. 감독 지시 없어도 상대투수와 수비 위치를 보고 본인이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어 "이게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다. 경기가 한창이다보면, 벤치보다 본인 판단이 맞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본인 스스로 하나씩 하다보면 개인기량이 늘어난다. 다른 선수들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언제나 베테랑의 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고참들이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후배들이 보고 배우고, 또 그 길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자신과 두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 최동수의 번트 자처는 여러모로 의미가 깊을 수 밖에 없었다.
목동=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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