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이 드라마를 왜 봤나 모르겠다."
22일 종영한 SBS 월화극 '패션왕'은 태생적 한계가 있는 작품이었다. 지난 2004년 안방극장에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전개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마라 '발리에서 생긴 일'의 이선미 · 김기호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는 사실은 '패션왕'이 보여줄 색깔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패션이라는 소재를 꺼내들었지만 이는 외형을 감싸는 화려한 눈요깃감 정도로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결국 유아인 신세경 이제훈 권유리 등 신세대 스타들이 그려낼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한 것이다.
주인공 유아인은 '패션왕' 제작발표회에서 "패션을 소재로 젊은 배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트렌디 드라마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통 멜로를 그린다. 어쩌면 그게 전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패션왕'는 패션으로 포장된 한 편의 진한 멜로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지금 남은 건 황당하고 허무한 시청자들의 마음뿐이다.
'발리에서 생긴 일'처럼 네 남녀의 치열한 사랑과 욕망을 다루면서 내면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묘사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지도 못했고, 깊은 의미의 메시지를 남기지도 못했다.
영어를 잘 못해 가영(신세경)에게 번역을 부탁하던 영걸(유아인)이 하루아침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엉성한 전개를 차치하고도 밑바닥 인생에서 꿈과 야망을 위해 달려온 영걸의 최후가 남기는 의미라도 찾을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선미 · 김기호 작가의 자기복제에 대한 강박관념은 드라마를 올 최고의 졸작으로 전락시키는 엄청난 우를 범하고 말았다.
총성이 울리는 마무리를 보며 시청자들은 기가 막힌다는 반응이다. 질투의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줬던 '발리에서 생긴 일'과 달리 설득력 없는 전개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욱이 영걸을 죽인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만든 열린 결말은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의 짜증을 가중시켰다. 과도한 간접광고(PPL)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녹록지 않은 연기 내공을 보여준 주연배우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패션왕'은 시쳇말로 '멘붕(멘탈 붕괴)' 드라마라는 오명을 남겼다.
'올해 최악의 드라마' '연기자들이 불쌍한 드라마' '작가의 정신 세계가 궁금한 드라마' '전파 낭비'라는 혹평이 줄을 잇고 있는 이유다.
김명은 기자 dram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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