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투수에게 '승리'란 매우 영광스러운 훈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던진 것이 인정을 받았다는 객관적 지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 이 '승리'라는 것이 운에 의해 좌우될 때가 있다. 매우 긴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던지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우연히 공 하나만 던지고도 '승리투수'의 영광을 품에 안을 때가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에서 간혹 벌어질 수 있는 '운'이 이런 희비의 엇갈림을 만든다.
100개, 200개를 던져봐도 소용이 없다
투수가 승리를 거두는 요건은 크게 선발일 때와 중간계투로 나왔을 때가 다르다. 선발이라면 최소 5이닝 이상 소화하면서 팀이 이기는 상황에 마운드를 내려갔을 때 기본적인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경기가 동점이 되거나 뒤집히면 승리가 날아간다. 중간계투는 '효율성'과 '시점'의 여부로 따지게 된다. 일단 해당 투수가 나왔을 때 경기가 뒤집히면 그 투수에게 승리 조건이 부여되는데, 때로 선발투수가 일찍 강판된 후 여러 명의 중간투수들이 이어던지며 팀을 승리로 이끈 경우에는 얼마나 승리에 공헌을 했는지 경기 기록원이 판단해 승리를 준다.
불운에 의해 승리를 못 따내는 투수들은 대부분 선발들이다. 긴 이닝을 던지고 내려갔는데, 막상 불펜진이 동점 혹은 역전을 허용할 때나 실점을 최소화하며 열심히 던졌지만 타선이 지원을 해주지 않았을 때다. 올해 류현진이 가장 이런 불운을 많이 겪었다. 류현진은 올해 무려 6차례의 등판에서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으나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지난 7일에는 5이닝 3실점을 기록하고 팀이 7-3으로 앞선 상황에 마운드를 내려왔는데, 불펜이 무려 4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는 바람에 또 승리를 날렸다.
KIA의 새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도 시즌 두 번째 등판에서 이와 비슷한 불행을 경험해야 했다. 지난 1일 인천 SK전에서 8이닝 동안 1점 밖에 내주지 않은 채 완투쇼를 펼쳤는데, 팀 타선은 1점조차 뽑아주지 못하는 바람에 0대1 패배를 당한 것. 외국인 투수로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결은 역시 지난 87년 5월 16일에 펼쳐진 해태 선동열과 롯데 최동원의 연장 15회 승부였다. 이들은 각각 232구(선동열)와 209구(최동원)을 던졌지만, 결국 팀이 연장 15회 접전끝에 2-2로 비기는 바람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요즘 기준으로 두 경기를 뛴 것 이상의 힘을 들이고도 소득을 얻지 못한 것이다.
승리? 공 하나면 충분해
선발이 이처럼 불운한 경우를 자주 겪게 되는 것과 달리 경기 중간에 나오는 불펜진은 때때로 엄청난 행운에 편승해 최소투구 승리를 거둘 수도 있다. 공을 딱 1개만 던지고도 승리 투수가 되는 영예를 얻는 것이다. 프로야구 31년 역사상 총 11번 나왔는데, 올해는 벌써 두 차례나 나왔다.
이런 행운을 올해 처음으로 맛본 주인공은 지난 5월 3일 목동 넥센전에 나온 롯데 최대성이었다. 최대성은 2-2로 맞선 8회말 등판해 김민우를 공 1개로 좌익수 뜬공 처리했다. 그런데 이이진 9회초 공격에서 롯데가 2점을 뽑으며 최대성이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두 번째 행운은 KIA 진해수가 차지했다. 진해수는 지난 7일 광주 삼성전에서 3-3 동점이던 8회초 2사후 나와 초구에 최형우를 3루 땅볼로 잡았다. 이후 8회말 KIA가 2점을 뽑아 결승점을 냈고, 9회 한기주가 마무리를 했다. 결국 타선의 도움 덕분에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운의 '원조'는 누구였을까. 이름도 생소한 롯데 불펜투수 김청수다. 김청수는 1990년 7월 26일 마산 빙그레전에서 프로 첫 1구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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