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가 안되면 발로라도 늘려야지요."
삼성과 한화의 주중 경기의 중계를 맡은 양상문 MBC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13일 이승엽에게 덕담을 건넸다. "주루 플레이 좋던데."
양 위원이 언급한 훌륭한 주루 플레이는 12일 한화전 도중에 나왔던 장면을 지칭한 것이었다.
이승엽은 이날 1회 보기드문 발솜씨를 보여줬다. 이전 타자 박석민이 선취점 적시타를 친 뒤 이어진 1사 1루 상황에서 우전안타를 치며 1사 1, 3루 찬스를 만들었다.
1루 주자로 뛰던 이승엽은 후속타자 강봉규가 포수 뒤쪽 파울 플라이로 아웃되자 절묘하게 2루를 훔쳤다. 한화 포수 정범모가 플라이를 잡은 뒤 내야쪽으로 송구할 생각을 잊은 듯 잠시 멍하고 있는 틈을 타 태그업으로 내달린 것이다.
'도루 전문가도 아닌 이승엽이 설마…'하고 방심했던 정범모는 허를 찔린 나머지 송구 타이밍도 놓친 채 바라만 봐야 했다.
이승엽은 이후 최형우의 적시타때 홈까지 밟았다. 이 덕분에 3-0 기선제압에 성공한 삼성은 9대3으로 여유있게 승리했으니 절묘한 발놀림 하나가 숨은공신이 된 것이다.
양 위원이 보기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기에 그런 덕담을 건넨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요즘 장타가 안나와서요"라고 대답했다.
양 위원은 무릎을 탁 쳤다. "아하, 그렇구나. 발로 뛰어서라도 한 루 더 전진해서 단타를 장타처럼 만들겠다는 것이군."
그렇다. 양 위원과 이승엽의 짧은 대화에는 이승엽의 간절함과 희생정신이 숨어 있었다.
'장타를 만들지 못하면 발로 뛰어서라도 찬스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기특한 것이다. 사실 1루수 주전을 도맡고 있는 이승엽같은 거포에게는 주루 플레이까지 신경쓰려면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체력도 빨리 고갈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승엽은 올시즌 13일 현재 53경기에서 100% 성공률로 도루 5개를 기록하고 있다. 이승엽이 프로생활 17년 동안 가장 많은 도루를 기록한 것이 1999년 10개였다. 올시즌 경기일정을 40% 밖에 소화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1999년보다 훨씬 많은 발야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타에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다. 현재 그의 장타율은 6할1푼1리. 일본으로 진출하기전인 2002년(6할8푼9리)과 2003년(6할9푼9리)에 비하면 저조한 편이다.
한창 젊은 시절과 지금이 같을 수는 없다. 이승엽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핏속에 흐르는 '장타본능'을 억누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에게서 장타가 나와야 팀에 활력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팀에 도움을 주고싶다는 그의 숨은 정성은 결국 빛을 발했다. 13일 한화전에서 13호 홈런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기회는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주어진다고. 이전 5경기에서 장타를 1개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품게 된 간절함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래도 이승엽은 "일본에서 갖다 맞히는데 치중했기 때문인지 큰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며 더 분발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승엽의 발야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가하는 채찍질이자 장타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대구=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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