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섰다."
긴 하루였다.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벗고 KIA의 붉은 유니폼을 입은 조영훈(30). 22일 SK전을 앞둔 광주구장에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낸 그는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훈련을 소화했다. 다른 선수들과 미처 보조를 맞추지 못한 것은 딱 하나. 집단 삭발에 동참하지 못한 점이었다. "나도 나중에 깎을 것"이라고 했다.
조영훈은 전날 상동에 있었다. 삼성-롯데의 퓨처스리그 경기에 5번타자로 출전, 9회 2사만루에서 결승타를 날리며 10대8 역전승을 이끌었다. 기쁜 소식의 전조였다. "왠지 기분이 좋더라구요. 오늘 아침 전화를 받았어요. 차를 몰고 오는데 길이 1차선(88고속도로)인데다 아침 먹을만한 휴게소가 없어서 답답했지만요."
힘들게 도착한 광주. 조영훈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KIA는 현재 극심한 타선 침체를 겪고 있다. 찬스에서의 해결사가 없다. 홈런을 날려줄 타자도 마땅치 않다. 왼손 라인업도 불안하다. 조영훈은 삼성 시절 만년 유망주였다. 대표팀 4번 출신 왼손 거포로 기대를 모았지만 붙박이 주전에는 늘 2%가 부족했다. "1년 잘하면 이듬해 못하고, 기복이 있었죠." 올시즌 설 자리가 더 줄었다. 1루수 이승엽의 입단 여파였다. 삼성 시절부터 조영훈의 재능을 아끼고 눈여겨보던 선동열 감독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선 감독은 이날 경기전 "사실 류중일 감독에게 사실상 부탁하다시피 했다"며 조영훈 영입에 각별한 공을 들였음을 시사했다. 이어 "희섭이가 체력 문제로 힘들어한다. 왼손 타자가 썩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안 쓸거면 뭐하러 데리고 왔겠느냐"며 즉시 투입을 시사했다. 실제 조영훈은 이적 첫날부터 7번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
조영훈도 새로운 기회의 땅에 대한 희망을 감추지 않았다. "소문이 돌길래 '혹시 가나?' 했는데 정작 듣고 마음이 쿵하더라. 하지만 이내 잘 됐다고 생각했다. KIA에 와보니 선수들 모두 머리를 깎는 등 해보자는 분위기가 강하더라. 좋은 타이밍에 잘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벼랑 끝에 온 셈이 아니냐. 좋은 기회로 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조영훈 영입에 앞장선 선 감독은 이날 코칭스태프 상견례 자리에서 조영훈에게 딱 두마디를 던졌다. "잘 왔다. (오늘 뛸) 준비해라."
광주=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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