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가 컸다'는 걸 어떻게 체감할 수 있을까.
프로야구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은 이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그 보다는, 꾸준히 1군에서 기회를 가진 선수들이 어느 순간 레벨을 뛰어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번 시즌에는 LG 유원상과 넥센 박병호가 이처럼 '부쩍 성장한 선수'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거론되고 있다.
유원상, 마운드 위의 행동이 달라졌다
1일 인천구장에서 열린 SK-LG전. 5-0으로 앞선 LG가 8회부터 유원상을 마운드에 올렸다. 그런데 유원상은 곧바로 이호준과 박정권에게 연속타자 홈런을 허용했다. 5-2로 점수차가 좁혀졌다.
홈런 맞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중요한 장면은 9회였다. 이닝이 시작된 뒤 연속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유원상은 무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안타 하나면 1점차가 되고, 여차하면 허무한 역전패까지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유원상은 후속 세 타자를 1루 땅볼-삼진-우익수플라이로 잡아내며 추가 실점 없이 5대2 승리를 지켰다. 예년의 유원상이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직전 이닝에 홈런을 친 이호준을 상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볼카운트 1B-2S에서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과거의 유원상이었다면, 이 장면에서 변화구를 구사하다 '패대기 볼'이 나와 허무하게 실점하는 경우가 나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을 것이다.
무사 만루 위기에서도 유원상은 차분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는 순간에도 대단히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저 할 일을 했다는 듯한 표정, 바로 유원상의 달라진 모습이다.
KIA 선동열 감독은 최근 "유원상이 마운드 위에서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포수로부터 공을 건네받을 때의 동작이라든가, 사인을 주고받을 때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보인다"고 말했다. 유원상이 투수로서 성장했다는 걸 증명하는 몸짓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간혹 제구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올시즌 LG의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서 38경기에서 2승2패, 3세이브14홀드에 평균자책점 2.10으로 활약해주고 있다.
박병호, 공 잘 보고 들어갑니다
타자 중에선 넥센 박병호가 훌쩍 성장한 케이스다. 홈런 공동 2위(16개), 타점 1위(58개), 장타율 3위(0.573)의 훌륭한 성적을 기록중이다.
박병호에 대해 모 구단의 전력분석원이 이렇게 설명했다. "병호가 확실히 성장했다. 삼진을 당할 때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공 세개만에 삼진 먹고 들어가더라도 올시즌의 박병호는 '공 잘 보고 들어갑니다'란 표정이다. 다음 타석에 치면 된다는 자세다. 이런 게 좋은 것이다. 어차피 매번 타석에서 좋은 안타를 칠 수는 없다. 삼진을 당할 때도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지는 지 알았다는 식으로 자신감있게 행동한다. 자신 없는 타자는 공 하나하나, 매 타석의 결과에 일희일비 한다. 박병호는 게임 전체를 보는 여유를 갖게 됐다."
투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진 당한 타자가 안절부절 못하면서 덕아웃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 다음 타석에서도 투수가 심리적으로 앞서게 된다. 어렵게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는데 그 타자가 씨익 웃으면서 들어가면, 반대 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전으로 계속 기회를 갖는 선수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야구가 늘어야한다"는 게 일선 지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 실제로 레벨이 달라질 정도로 성장하는 케이스를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면에서 올시즌의 유원상과 박병호는 확실히 '선수가 컸다'는 걸 입증하는 모범사례다.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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