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탈출구가 없을만큼 절망적일 때가 있다. 앞이 캄캄할 정도로 암담한 순간, 생각하지도 못한 반전이 찾아온다. 어쩌면 그게 바닥이다. 그 때부터는 올라갈 일만 남는다.
바닥을 확인한 한화. 후반 행보가 심상치 않다. 후반기 들어 4승1패(28일 현재). 만만치 않은 롯데, KIA를 상대로 잇단 위닝시리즈를 완성해냈다. 후반 개막 무렵, 한화가 처한 상황은 암담했다. 5선발 중 무려 3명(박찬호 양 훈 유창식)이 빠진 채 후반을 맞았다. 바티스타 부진 속 정식 마무리조차 없던 상황. 설상가상으로 션 헨 퇴출 발표와 함께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위기는 내부 결속의 촉매제였다. 위기감과 절박감 속에 선수들이 뭉쳤다. 집중력으로 발휘됐다. 속단은 이르지만 희망적 요소들이 제법 보인다.
바티스타, 유창식의 재발견
27일 KIA전은 바티스타의 야구인생에 잊을 수 없는 날이었다. 한국 무대 데뷔 후 첫 선발 등판. 벼랑 끝에 오른 마운드였다. 불펜 수행 능력에 대해 더이상 기대할 수 없던 시점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 멋지게 살렸다. 5⅔이닝 2안타 1실점. '한국 온 뒤 가장 높은 스트라이크 비율인 것 같다'는 관계자들의 말처럼 이날 만큼 바티스타는 '제구력 문제아'가 아니었다. 86개만에 내려간 바티스타에 대해 한대화 감독은 "70개쯤 던지게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 던졌다"며 "앞으로 선발 기회가 더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발 연착륙의 긍정 신호는 또 있다. 생각보다 원활했던 슬라이드 스텝이었다. 한 감독은 "퀵 모션을 걱정했는데 1.35초 정도로 우려했던 것보다 괜찮았다"고 설명했다. 상대팀 선동열 감독도 "이날 구위면 15승도 하겠다"며 깜짝 변신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흐뭇한 한 감독의 기분을 하루 더 유지시켜준 투수, 유창식이었다. 손목부상으로 빠져있던 그는 28일 KIA전에 돌아왔다. 복귀하자마자 고교 시절 익숙한 광주구장 마운드서 눈 부신 호투를 펼쳤다. 7⅔이닝 동안 단 1안타 1실점. 올시즌 최고의 피칭이었다. 패스트볼로 KIA 타선을 압도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다. 유창식은 "초반 슬라이더가 좋지 않아 힘들었지만 직구가 괜찮았던 것 같다"고 했다. 여전히 60%를 넘기지 못한 스트라이크 비율, 볼넷 4개를 내준 제구력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하지만 완벽하게 제구된 몸쪽 패스트볼은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 김상현 안치홍 등을 스탠딩 삼진으로 솎아낸 몸쪽 공을 언제든 던질수만 있게 된다면 유창식의 백조 탄생이 머지 않았다.
끈끈해진 타선과 수비 집중력
강팀과 약팀의 차이는 미세한 승부처에서 갈린다. 전반기 한화는 결정적 순간 약했다. 꼭 필요한 순간, 득점타가 나오지 않았다. 수비와 주루 실수로 자멸한 경기도 많다.
하지만 후반기 한화는 딴판이다. 4승 중 3승이 역전승. 특히 KIA전 2경기는 타이트한 한두점 차 승부에서 승리를 완성해냈다. 주목할 점은 타선의 고른 활약이었다. 타선의 중심인 '4할 타자' 김태균이 2경기에서 무안타로 침묵한 가운데 이룬 역전승이라 의미가 두배. 장성호 김경언 이여상 신경현 이대수 한상훈 오선진 등 고른 타자들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2경기 연속 경기 후반 역전승을 이끌었다.
수비와 주루에서도 전반기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집중력을 발휘하며 투수들의 호투를 도왔다. 이틀 연속 세이브를 기록한 새 마무리 안승민을 비롯, 불펜진도 잇단 위기 속에 박빙의 리드를 집중력있는 피칭으로 잘 지켜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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