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룰렛게임'인 11m 승부차기에도 과학이 있다.
키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발끝을 떠난 볼이 골라인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0.4초다. 하지만 골키퍼가 볼의 방향을 감지하고 몸을 움직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0.6초(반응시간 0.15초+동작발현시간 0.25초+이동시간 0.2초)다. 키커가 골대의 모서리로 차기라도 한다면 골키퍼는 너비 7m32, 높이 2m44의 공간을 모두 커버하기엔 역부족이다. 순발력이 아무리 뛰어난 골키퍼라 할지라도 전체 골문의 43.5% 밖에 방어할 수 없다.
변수는 심리적 지배를 받는 인간이다. 심리적인 상황에서는 키커의 압박감이 훨씬 크다. 키커는 '성공하면 본전, 실패하면 역적'이 된다. 반대로 골키퍼는 '막으면 영웅, 못막아도 그만'이라는 불문율이 존재한다.
홍명보호가 5일(한국시각) 런던에서 올림픽 사상 첫 4강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8강전에서 '축구 종가' 영국을 격침시켰다. 11m 전쟁에서 승리했다. 지동원이 선제골을 터트린 후 한국은 영국에 두 차례나 페널티킥을 허용했다. 선발 출격한 정성룡(수원)이 첫 번째 승부처에선 골을 허용했지만, 두 번째는 선방했다. 120분 연장접전 끝에 1대1로 비겼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정성룡은 없었다. 그는 후반 17분 부상으로 교체됐다. 이범영(부산)이 골문을 지켰다. 이운재(전남)가 10년 전 스페인 호아킨의 승부차기를 막아내는 추억의 명장면이 재연됐다. 그는 영국의 다섯번째 키커로 나선 스터리지의 슈팅을 몸을 날려 막아냈다. 5-4, 대한민국이 감격에 젖었다.
그라운드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다. 골망을 흔드는 골잡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세리머니와 함께 춤을 춘다. 골키퍼는 음지에서 고독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골문이 열리는 순간 땅을 친다. 정성룡과 이범영, 올림픽대표팀의 듀오는 골키퍼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K-리그의 힘을 과시했다.
8월 둘째 주 스포츠토토와 함께하는 2012년 스포츠조선 프로축구 선수랭킹은 골키퍼 순위를 짚어봤다. 아쉽게도 정성룡과 이범영은 올림픽대표팀에 차출된 후 평점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K-리그 동료들이 점수를 추가해 순위는 하락했다. 19경기에 출전한 정성룡은 192점으로 88위에 포진했다. 전상욱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 이범영은 5경기에 출전, 318위(41점)를 기록했다. 이번 주 랭킹은 4일과 5일 열린 25라운드가 반영됐다. 최고의 수문장은 서울(2위·승점 52)의 김용대(16위·275점)였다. 올시즌 전경기에 출전한 그는 팀의 K-리그 최소 실점(23골)을 이끌고 있다. 4일 강원전(3대2 승)에서는 10점(선발 출전 5점+승리 5점)을 추가했다. 골키퍼는 선발(5점), 승(5점)-무(3점)-패(0점)에 이어 무실점 선방시 가산점이 부여된다. 출전 시간에 따라 최다 5점을 받을 수 있다. 무실점 무승부시에는 2점의 가산점이 주어진다. 아무래도 골을 넣는 선수들에 비해 순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울산의 수문장 김영광이 48위(229점)로 골키퍼 부문 2위에 올라있다. 톱50에 포진한 선수는 김용대와 김영광 뿐이다. 42세인 경남의 백전노장 김병지(64위·212점), 부산 전상욱(70위·207점), 대구 박준혁(79위·201점), 정성룡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대전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최은성이 103위(182점), 인천 유 현 126위(169점), 제주 한동원 128위(168점), 전남 이운재 137위(163점), 대전 김선규 138위(162점), 광주 박호진 149위(153점), 포항 신화용 170위(139점), 강원 송유걸 172위(138점), 성남 하강진 190위(121점), 상주 권순태가 201위(113점)에 포진해 있다. 올림픽 4강 덕분에 골키퍼가 제대로 주목받고 있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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