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가 헛바람만 일으키며 돌아갈 때, 마음먹고 쳤는데 힘없는 땅볼이 되어 버릴 때. 그럴 때마다 삼성 박석민의 가슴에는 멍이 들었다.
명색이 '명문구단' 삼성의 4번타자다. 게다가 한 해의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한국시리즈 무대다. 그런데 박석민은 부진했다. 못쳐도 너무 못쳤다. 5차전까지 14타수 1안타, 타율은 7푼1리밖에 되지 않았다. 자신을 믿고 계속 주전으로 내보내 준 류중일 감독에게도 미안했고, 팀 동료들이게도 면목이 서지 않았다.
원인은 있었다. 정규시즌 막판, 옆구리를 다치는 바람에 훈련이 부족해 스윙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경기 감각이 떨어지면 우선 빠른 공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 스피드를 몸이 낯설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석민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결국 류 감독은 4차전까지 계속 박석민을 4번으로 내보냈다가 5차전부터는 6번으로 내렸다. 부담감을 갖지 말라는 배려였다.
한국시리즈 내내 박석민이 처해 있던 상황이다. 하지만 박석민은 시리즈 내내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부상에 따른 훈련부족으로 감이 좋지 않다는 식의 핑계는 대고싶지 않았다. 그건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았다. '제대로 한번은 꼭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그런 박석민이 결국에는 '한방'을 보여줬다. '남자의 자존심'은 말보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외침과 같은 홈런이었다. 박석민은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와의 2012 한국시리즈 6차전에 6번 3루수로 선발출전했다. 5차전에 이은 2연속 6번 출전이다. 그러나 타순은 중요치 않았다. 언제서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 방을 날리는 게,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게 박석민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기회는 일찍 찾아왔다. 1-0으로 앞서던 4회초 1사 1루, 박석민이 타석에 들어섰다. SK 선발 마리오를 잠시 노려본 박석민은 볼카운트 2B1S에서 4구째 슬라이더(시속 134㎞)가 높이 뜨자 지체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맞는 순간, 이미 타구가 떨어질 곳이 관중석의 어딘가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홈런, 승리에 쐐기를 박는 비거리 120m짜리 대형 3점포였다.
사실 이 홈런이 나오기까지는 대선배 양준혁의 도움도 있었다. 이날 경기 전 삼성 덕아웃을 찾은 양준혁 SBS 해설위원은 박석민에게 "오늘은 일단 맞고서라도 나가라"는 뼈있는 농담을 건넸다. 후배의 부진이 안타까웠던 나머지 사구로라도 출루하면 감각이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박석민은 "그런 것을 구사할 때는 이미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선배의 충고는 고맙지만, 사구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정면승부해서 이겨내겠다는 뜻이었다. 그게 '박석민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말처럼 박석민은 커다란 대형 홈런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더불어 이 홈런은 삼성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축포이기도 했다.
잠실=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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