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무니다."
그렇다. MBC '아랑사또전'의 한정수는 몇 개월간 사람이 아니무니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에 짙은 스모키로 강조한 눈빛. 한정수가 연기한 저승사자 무영은 옥황상제와 염라대왕의 최종병기였다. 자세히 뜯어 보면 '개그콘서트'의 갸루상과 똑같은 분장인데, 카리스마는 극과 극이다. 한정수도 흘리듯 슬쩍 갸루상의 성대모사를 하며 껄껄 웃는다. 두터운 분장에도 다행히 피부 트러블은 없었다고 한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한밤중의 숲속, 한정수와 저승사자 군단이 하늘에서 검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내려오는 모습은 '아랑사또전'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했다. 드라마 '추노'에서 검증받은 한정수의 절도 있는 액션은 더더욱 압권. 그런데 웬걸. 와이어 액션은 처음 해봤다고 한다. "와이어가 정말 재밌는데 진짜 위험하더라고요. 한번은 기중기로 30미터 가까이 끌어올렸다가 내려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줄 하나에 매달려 있으려니 아찔하더라고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그래서 옆에 있던 저승사자 동생들 손을 꽉 잡았죠. 혹시라도 줄이 끊어지면 붙잡아주려고요."
액션 연기는 베테랑 한정수에게도 쉽지가 않다. 사고가 안 일어나는 게 되레 신기할 정도로 드라마 제작현장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한정수는 "배우들이 무리해서 액션을 소화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칫 다치기라도 한다면 100명 넘는 스태프에게 더 큰 피해가 되기 때문. "배우가 액션을 직접 연기하는 것이 미덕인 것처럼 돼버렸지만 그게 결코 현명한 건 아니라고 봐요."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처녀귀신 아랑(신민아)과 사또 은오(이준기)의 미스터리 로맨스를 그린 '아랑사또전'. 극 초반 섬뜩한 얼굴로 아랑을 쫓던 무영은 극 후반부에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전생에서 서로 사랑했으나 지금은 원귀가 된 연인을 제 손으로 없앤 뒤 연기처럼 소멸했다. 아랑과 은오만큼이나 애틋한 러브스토리였지만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한정수도 그 점이 마음에 걸렸는지 감독에게 무영을 환생시켜달라고 했단다. "아랑과 은오도 다시 태어나고 주왈(연우진)도 죽어서 저승사자가 된다잖아요. 저만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햇님 달님'으로 환생시켜 달라고 말했죠. 그런데 무영을 염소로 환생시킬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것도 하얀 염소로…. 그냥 사라지는 게 나았을 것 같아요. 괜히 나섰나 봐요. 제가 실수했어요. (웃음)"
'상남자' 한정수가 귀여운 '흰 염소'라니, 올해 최고의 반전 캐릭터로 꼽을 만하다. 그런데 '햇님 달님'으로 환생했어도 웃긴 건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원래 한정수는 코믹한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시트콤에서 '대박' 웃길 자신도 있다"고 강조했다. "사극에서 정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역할만 하는 것 같아서 때론 답답해요. 저도 이젠 가볍고 편안한 역할을 만나고 싶죠. 원래는 제가 되게 웃기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때 꿈이 개그맨이었다니까요. 드라마에서 멋있는 척하는 게 더 힘들어요." 사실 한정수는 몇 달 전 MBC '주얼리 하우스'로 예능 나들이를 했다. 숨겨둔 개그 본능을 꺼내려던 차에 프로그램이 폐지돼 기회를 놓쳤지만, 방송이 진행되는 중에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도 내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렇게 유머러스한 성격에 외모와 식스팩까지 완벽한데도 한정수는 아직 화려한 솔로. 취미는 헬스인 데다 야구팀, 농구팀, 축구팀, 골프팀의 멤버라니 주변에 남자만 많을 수밖에. "예전엔 작품을 마치면 주변에 소개팅 주선을 부탁하기도 하고 연애를 하려고 노력도 해봤죠. 그런데 나이 먹으면 인간 관계의 폭이 좁아져요. 마흔이 넘으니까 친한 사람만 만나게 되더라고요. 저도 그렇고 저희 어머니도 제 결혼은 반쯤 포기했어요." 연애 얘기에 고개를 푹 숙이며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 남자, 알고 보면 '귀요미'인 이 남자, 다음 작품에선 '진짜 한정수'를 만나볼 수 있기를.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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