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머리를 보호하라.'
투수가 타자와 마찬가지로 헬맷이나 헤드기어같은 보호장구를 쓰고 피칭을 한다?
상상만 해도 다소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투수가 이같은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피칭을 한다면 선수 본인부터 거추장스러울 것이다. 여지껏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모습에 보는 팬들도 적응하기 힘들 것같다.
하지만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 프로야구가 최근 투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머리 보호장구 착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3일(한국시각)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은 4일부터 나흘간 실시되는 윈터미팅때 논의할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로 투수의 보호장구 착용을 논의할 예정이다.
MLB 사무국의 댄 할렘 수석 부사장은 'MLB 사무국은 투수 보호 안건을 신속해결과제(fast track)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수들의 부상방지 대책으로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타자나 포수처럼 헬맷이나 헤드기어를 쓰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MLB의 의학담당 이사인 개리 그린 박사는 "우리는 그동안 투수들의 머리 보호를 위해 여러 관계자들과 논의한 결과 헤드기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투수들이 쓰게 될 보호장구는 타자의 헬맷처럼 부담스러운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실제 타자들과 같은 헬맷을 착용할 경우 투수들이 볼을 뿌릴 때 헬맷이 훌렁 벗겨질 우려가 크다.
그래서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이 '케블라(Kevlar) 라이너(liner)'다. 케블라는 미국 듀폰사가 개발한 고강력 특수섬유의 상표명이지만 일반 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다.
강한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케블라는 타이어 코드나 방탄복, 미식축구의 유니폼 내부 보호장비 등에 쓰이는 것으로 가볍고 부피가 크지 않아 착용감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투수들은 럭비 선수처럼 케블라 헤드기어를 착용하고 그 위에 기존의 챙이 달린 모자를 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MLB는 이번 윈터미팅에서 구단들의 공감대를 형성한 뒤 내년 시즌부터 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다만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마이너리그에서 우선 적용한 뒤 보호장구 착용에 대한 여론을 살필 계획이다.
미국 언론들은 '내년부터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투수들이 머리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방안은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제도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하고 있고, 마이너리그 구단들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MLB가 이같은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선 것은 올시즌 연거푸 일어난 아찔한 사고 때문이다.
지난 9월 오클랜드의 브랜든 맥카시는 LA 에인절스와의 경기 도중 상대 타자의 직선타구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 골절과 뇌손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선수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디트로이트의 덕 피스터는 지난 10월 26일 월드시리즈 2차전 샌프란시스코와의 경기에서 맥카시와 마찬가지로 강습타구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지만 추가 부상을 하지는 않았다.
수십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투수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자 더이상 손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도 투수 보호장구가 정착되기까지 적잖은 진통도 예상된다. 일부 투수들이 자신의 트위터 등을 통해 '헬맷을 착용하기 싫다', '여러분은 투수가 피칭을 할 때 헬맷쓴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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