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당했어요."
투정 부리듯 얘기했지만, 애정이 담겨 있었다. 툭툭 내뱉는 특유의 화법 때문인지 오히려 정감 있게 들렸다. 배우 설경구가 영화 '타워' 출연에 얽힌 뒷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무슨 사연일까?
"처음엔 영화를 11월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어요. 겨울 장면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요. 그리고 나서 크리스마스 때 개봉을 할 거라고요. 그래서 결정을 하고 기다렸는데 12월이 돼도 연락이 없고, 다음해 1월이 돼도 연락이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봄이 됐어요. 곧 찍는대요.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했죠. '날짜를 달라. 그래야 배우들이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했어요. 결국 5월 18일에 촬영에 들어갔죠."
촬영 날짜가 미뤄지다 보니 겨울 신을 여름에 촬영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불 끄는 장면을 찍기 위해 소방관 옷을 입는 순간 안이 다 땀으로 젖었다"는 것. 그는 "겨울 장면인데 입김이 하나도 안 났다"며 웃었다. 반대로 물 속에서 추운 장면을 찍어야 하는 손예진과 김상경은 10월 말에 야외에서 촬영을 해야 했다.
'타워'는 고층 빌딩에서 일어난 화재현장을 배경으로 불길에 맞서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설경구는 사명감으로 뭉친 소방관 강영기 역을 연기한다.
설경구는 '타워'의 출연 여부를 '쿨하게' 결정했다. 김지훈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었다. "자기는 촬영 현장에 나오면서 오늘은 무엇으로 배우들을 재밌게 해주고 웃길까 고민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말이 재밌었고 고마웠어요."
그는 손예진의 캐스팅에도 한 몫을 했다. "예진이의 소속사 대표님을 만나서 술도 마시고, 김지훈 감독이 예진이가 찍던 영화 '오싹한 연애' 현장에 가서 정성을 들이기도 했어요. 협공의 승리였죠.(웃음) 예진이가 데뷔한 이후로 한 번도 소속사에서 '이 작품 해라'고 한 적이 없대요.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너 이거 해야할 것 같애'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불과의 사투, 물과의 사투를 벌여야 하는 촬영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설경구를 힘들게 한 건 유독가스였다.
"스모그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었어요. 자연 유독가스가 항상 뿌옇게 깔려있으니까요. 두통이 굉장히 심했어요. 실제 소방관은 화재 현장에서 뛰지 않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뛰었죠. 그러다 보니 호흡도 가빠지고 유독가스를 폭풍 흡입을 해야 했어요. 머리가 띵한 상태였어요."
그는 "고생스러웠겠다"는 말에 대해선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소방관은 사명감과 희생감 없이 못하는 일이거든요. 물론 저는 그걸 알고 표현하려고 애를 썼죠. 하지만 충분히 안전 장치를 하고 촬영을 한 거잖아요. 숭고한 일을 하시는 소방관들 앞에서 제가 '죽을 고생을 했다'고 말할 순 없는 거죠."
그러면서 소방 훈련 중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불을 지르고 훈련을 받았는데 들어가자마자 하나도 안 보여요. 한 치 앞이 안 보이는데 제가 구조할 사람(마네킹)을 더듬어서 찾아야 했어요. 그런데 어디가 어딘지 정신을 못 차려서 마네팅을 계속 밟는 거예요. 같이 훈련한 사람들끼리 '밟아서 죽였다'고 그랬어요.(웃음)"
설경구는 "'타워'는 왠지 엄마 생각이 나는 영화"라며 "영화 안에 세상의 모든 군상들이 다 살아있다. 다양한 계층의 분들이 봐도 좋을 만한 영화다. 추운 겨울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엄마, 금방 집에 들어갈게'라고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해욱 기자 amorr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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