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22일. LG로선 악몽같은 날이다. 5-3으로 앞서던 9회 마무리 봉중근의 블론세이브. 연장 승부 끝 역전패 여파는 1패 이상으로 컸다. 시즌 첫 실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봉중근은 소화전을 쳐 오른손 뼈가 부러졌다. 소화전으로 탓에 소방수를 잃은 그날 이후, LG호는 속절 없이 추락했다. 4강 꿈은 타이어 바람 빠지듯 조금씩 사그러들어 더는 달릴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역사가 10년 연속으로 연장되는 순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2012년 LG 잔혹사 중 한 장면. 하지만 LG 김기태 감독은 다르다. 실패,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중단은 없다. 피하지 않고 맞서기로 했다. '오뚝이 인형' 탄생 배경이다. 결과가 안 좋았을 뿐 '봉중근 사건'은 언제 어느팀, 어느 선수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KIA 윤석민 등 유사 사례도 수두룩했다. 그 정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승부욕이 없다면 사실 프로선수도 아니다. 순간 치밀어 오른 화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만큼 생각을 마비시켰다. 그저 결과적으로 경솔했을 뿐이다.
조금 우스꽝게도 보이는 오뚝이 인형 덕아웃 배치 결정. 실제 기능보다 행간 속에 읽히는 상징에 무게가 실린다. 조계현 수석코치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부상 당하지 말라는 차원과 함께 오뚝이 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느끼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오뚝이란 상징을 통해 김 감독이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쓰러질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다. 누구나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야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잘 달리다 번번이 돌부리에 걸려 쓰러져 상처를 입었던 지난 10년. 과거는 과거다. 바꿀 수 없다.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의 삶을 모아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자는 김기태 감독의 신년 메시지가 바로 오뚝이 속에 숨어 있다. 시무식 첫날 출입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오뚝이 프로젝트'를 일부러 설명한 이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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