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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자리는 채워지기 마련이다. 이제 새로운 선수들이 한국 축구 전면에 나섰다. 이들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유소년이었다. 박지성과 이영표를 보며 꿈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 유럽에 진출했다. 경험을 쌓으며 기량을 키웠다. 이제 이들은 A대표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이청용(볼턴)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손흥민(함부르크)으로 이어지는 뉴(NEW) 유럽파들이다. 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전에서 뉴유럽파의 현재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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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기성용만 찾았다.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열린 훈련에서 기성용은 없었다. 기성용은 계속 이어지는 경기 출전에 지쳐있었다. A대표팀 훈련 대신 휴식과 실내 훈련에 집중했다. A대표팀 의무진의 특별 관리를 받았다. 기성용의 부재에 미디어들은 '허리 비상'을 외쳤다. 최강희 A대표팀 감독은 "기성용이 없어도 대안은 있다. 기성용 하나로 흔들릴 A대표팀이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쉽사리 불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최 감독은 크로아티아전에 기성용을 선발로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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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용의 진가는 3일 후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스완지시티와 퀸즈파크레인저스(QPR)의 경기에서도 드러났다. 직접 본 스완지시티의 기성용은 팀의 핵심 원동력이었다. 미카엘 라우드럽 스완지시티 감독은 패스와 밸런스, 점유율을 강조한다. 기성용은 라우드럽 감독이 추구하는 우아한 축구의 굳은 일을 담당한다. 포백의 방패막이다.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상대 공격의 핵심을 전담마크한다. 공격할 때에도 언제나 움직인다. 동료 선수들이 볼을 쉽게 패스할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한다. 볼을 받아 빈 곳으로 뿌려준다. 공격과 수비의 연결고리다. 화려하지는 않다. 대지를 가르는 킬패스보다는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횡패스와 백패스, 대각선 패스 위주의 플레이를 펼친다. 몸싸움하고 태클하고 패스하고, 한 숨도 쉬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기성용의 하얀 유니폼은 언제나 흙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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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은 지난해 11월 이란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경기에도 나섰지만 원정 경기인데다가 팀의 패배로 아쉬움을 남겼었다. 크로아티아전은 이청용의 기량을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몸은 가벼웠다. 오른쪽 측면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날카로운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공략했다. 승부가 기운 뒤에도 이청용만큼은 활발했다. 참패 속 보여준 한 줄기 희망이었다. 부상 이전 보여준 플레이에 거의 근접했다. 블루드래곤은 다시 비상 준비를 마쳤다. 이청용도 "부상전과 비교해 몸상태는 거의 비슷하다.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청용이 극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트라우마(Trauma)다. 9개월간의 장기 부상은 잊고 싶은 기억이다. 몸은 제 상태로 돌아왔지만 마음의 상처는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 이청용은 "트라우마는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지울 수 없다. 비슷한 상황이 되면 몸을 움추릴 수 밖에 없다. 이청용도 "물론 같은 상황이 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했다. 본인은 트라우마가 아니라고 했지만 무의식 속 상처임에는 틀림없다.
구자철의 축구 인생은 '도전' 그리고 '해피엔딩'의 연속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 그리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체력이 좋지 않았다. 가기로 했던 대학교도 '빈혈'때문에 없던 일이 됐다. 여러모로 흠이 많았다. 제주는 이런 그를 품었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구자철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구자철에게 제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도전을 선택했다. 가능성이 폭발했다. 체력은 좋아지고 기술도 늘었다. 제주의 주축으로 거듭났다. 2010년 제주가 K-리그 준우승을 거두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독일에서 러브콜이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볼프스부르크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마가트 감독은 구자철을 중용하지 않았다. 들쭉날쭉한 출전으로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구자철은 '기회는 올것'이라며 묵묵히 준비했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임대 제의가 왔다. 구자철은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2011~2012시즌 중간 팀을 옮겼다. 맞아떨어졌다.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아우크스부르크는 구자철의 활약 아래 강등을 피했다. 구자철은 아우크스부르크의 핵심이 됐다.
2012년 런던올림픽 역시 도전이었다. 메달이 목표였지만 사실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래도 구자철은 팀과 자신을 믿었다.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다. 결과는 역시 해피엔딩이었다.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제 구자철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따라잡기다. 크로아티아전에서 모드리치와 마주했다. 역부족이었다. 모드리치와 자신은 클래스가 달랐다. 구자철은 모드리치 공략에 실패했다. 팀도 0대4로 졌다. 실망이 컸지만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크로아티아전은 친선경기였다. 좋은 자극이 됐다. 모드리치를 따라잡겠다는 도전의식이 솟구쳤다. 구자철은 "이번 크로아티아전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됐다"고 했다. 모드리치. 구자철에게는 새로운 도전 상대다.
이번 크로아티아전을 앞두고 A대표팀의 또 다른 이슈는 '손흥민'이었다. 더 이상 손흥민은 어린 유망주가 아니었다.분데스리가 전반기에만 6골을 몰아쳤다. 독일 현지에서는 '손세이셔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크로아티아전 직전에 열린 베르더 브레멘전(1월 28일)에서 7호골을 넣었다. 손흥민의 골폭풍에 전 유럽이 주목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은 함부르크에 1000만 파운드를 내겠다고 했다. 첼시도 영입전에 뛰어들었다. 겨울 손흥민은 함부르크 잔류를 선택했다. 유럽 최고의 '핫아이템'으로 떠오른 손흥민을 최강희 감독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포인트였다.
하지만 첫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함부르크 에이스 손흥민은 A대표팀에서는 팀의 막내일 뿐이었다.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포지션도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아닌 왼쪽 측면 공격수였다. 트레이드마크인 과감한 슈팅은 단 한차례 밖에 없었다. 수비 가담과 포지셔닝 플레이에만 치중했다. 손흥민의 장점은 죽어있었다. 한국 축구의 미덕인 '배려'에 갇혀 있었다. 크로아티아전이 끝나고 열린 도르트문트전에서 시즌 8~9호골을 몰아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손흥민의 성장은 한국 축구의 성장이다. 골욕심이 많고 적극적인 '유럽형' 손흥민을 '한국형' 축구의 집합체인 A대표팀에 잘 이식하는 것. 한국 축구의 과제다.
런던, 스완지=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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