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나이츠 창단 이후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문경은 감독(42)에게 전술적인 주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중에서도 문 감독을 나무랄 수 있는 유일한 이가 아버지 문귀곤씨(72)다.
문경은은 성인이 된 후에도 경기 전날과 경기를 마치고 꼭 아버지 문씨와 전화통화를 한다. SK 사령탑이 된 후에도 부친과 얘기를 하고 나야 마음이 안정돼 단 한번도 빼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농구 선수 출신이 아니다. 젊은 시절 세탁소를 운영해 장남 문 감독을 포함 2남1녀를 키워냈다. 문경은이 서울 전농초에서 농구를 하기 위해 답십리초로 전학간 후부터 아버지는 아들 뒷바라지를 했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아들의 전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어릴 때는 전국 방방곡곡을, 대학 때는 해외 전지훈련까지 따라갔다. 전국 농구장의 맨 윗층 기둥 옆자리가 그의 주 지정석이다. 요즘은 4쿼터에 가슴이 떨려 경기장 보다 주로 집에서 TV로 생중계를 본다. 아버지 문씨는 "아들 문경은에 대해선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다"면서 "아들도 자신의 과거 기록을 나한테 물어온다"고 말했다. 지금도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기록을 정리하고 신문 기사 스크랩을 하고 있다. 서울 고향 집은 문경은의 과거와 현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잡다한 박물관 같다.
SK는 지난 2월 26일 KGC전에서 지면서 연승 행진이 '11'에서 중단됐다. 문 감독은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혼쭐이 났다. 아버지 문씨는 "아들이 잘못을 많이 했다. 주전 선수들이 턴오버를 연발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데도 계속 믿고 맡기는 게 실수였다"고 질책했다. 문 감독은 아버지의 싫은 소리를 경청하고 난 후 대구없이 통화를 끊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문 감독은 지난 2011~12시즌 처음 감독대행으로 SK를 이끌었다가 9위로 성적이 나빴다. 문 감독은 1990년대 농구대잔치 오빠 부대 스타 출신 중 가장 먼저 사령탑에 올랐다. 실패할 수 있는 위험이 컸다. 섣불리 도전했다가 무너질 경우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버지도 아들도 그게 늘 부담이었다.
문 감독은 선수 시절 '람보 슈터'로 3점슛 달인이었다. 별명 람보에 어울리지 않게 코트 안팎에서 사람 좋은 '순둥이'로 통했다. 그는 적을 만들지 않았다.
큰 덩치와는 달리 성격이 꼼꼼하고 세심하다. 떡복이, 라면 등 분식을 즐긴다. 아줌마 처럼 알콩달콩 소소한 얘기를 맛깔스럽게 잘 풀어낸다. 경기 전 머리 손질하는데 20분, 넥타이 매는데 10분 이상 걸린다. 넥타이 경우 자신이 원하는 모양과 길이가 나올 때까지 매고 풀고를 수십번 반복한다. 사령탑 초기엔 서울 잠실 홈 경기 때 경기장으로 선수단 버스가 출발하기 전 샤워하고 양복 입고, 머리하고 넥타이 매는데 총 1시간30분이 걸리기도 했다.
문 감독은 스스로 초보 사령탑이라고 인정한다. 지휘봉을 잡은 지 2년 만에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명장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갈길이 구만리인 전도 유망한 젊은 지도자다.
SK와 문 감독은 아직 배고프다. 정규리그 우승에 만족하지 않는다.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다. 문 감독은 이번이 기회라고 했다. SK는 지난 1999~2000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아직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통합 챔피언을 한 적이 없다.
주변에선 SK가 정규리그에선 우승했지만 단기전인 포스트시즌까지 정상을 차지하는 건 쉽지 않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제부터 문경은의 승부사 기질이 시험대에 오른다. 이 관문을 통과할 경우 문 감독에 대한 평가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모두가 인정하는 챔피언 감독이 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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