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경기장으로 갈게요. 제가 가야죠."
자신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각각 다른 일을 처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여자농구 우리은행 전주원 코치에게 적어도 19일 만큼은 평생에 단 한번 뿐이라도 그런 초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바란 날이었을 것이다.
이날 전 코치는 반드시 있어야만 할 곳이 두 군데나 됐다.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마련된 모친의 빈소를 지켜야 했고, 동시에 이날 오후 5시에 경기도 용인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생명과의 2012~2013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도 치러야 했다.
두 가지 일이 모두 우선 순위를 매기기 쉽지 않을 정도로 중요했다. 18일 아침에 급작스럽게 별세한 故 천숙자씨는 오늘날의 '전주원'을 있게 해 준 어머니다. 또 전 코치가 이번 시즌 새롭게 부임한 우리은행은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면 2006 겨울리그 이후 7년 만에 챔피언에 오르게 된다. 코치로서 첫 우승을 경험할 수도 있는 날이다. 초능력이 없는 전 코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결정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지난해 3월 전 코치와 함께 신한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옮긴 위성우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 전 코치에게 위로의 말밖에 건넬 수 없었다. 신한은행 시절 코치와 선수로, 그리고 우리은행에서는 감독과 코치로 오랜 호흡을 맞춰온 사이라 전 코치의 깊은 상심을 가족 못지 않게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의 입장만 따진다면 우리은행을 함께 이끌어 온 전 코치가 반드시 이날 경기장에 있어주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지인의 인간적인 입장은 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위 감독은 그래서 그저 전 코치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는 말만 했다.
빈소에 앉아 어머니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전 코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 17일까지만 해도 전주원의 모친은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관전하며 딸과 딸이 이끄는 팀을 응원했었다. 그랬던 분이 다음날 아침 고인이 됐다. 그것도 우승을 기원하기 위해 새벽기도를 갔다가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거짓말같은 현실 앞에서, 전 코치는 목이 잠기고 말았다. 하지만 전 코치는 결국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아마도 전 코치는 돌아가신 모친이 전 코치가 빈소에서 주저앉아 슬픔에 잠기는 것보다는 경기장에서 우승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족과 상의 끝에 전 코치는 경기장 행을 택했다.
이날 경기를 앞둔 위 감독은 "전 코치와 통화를 하는데, 깊이 잠긴 목소리로 경기장에 오겠다고 하더라. 무척이나 고맙고 미안했다. 전 코치가 오면 나나 선수들이나 큰 힘을 얻을 것 같다"면서 "사실 전 코치가 못오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내가 쉽게 흥분하는 편인데, 전 코치가 늘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곤 했다. 경기장에 와 준다니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 직전 결국 전 코치는 코트에 나타났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가슴 한 켠에 몰아넣은 채 평소와 다름없이 벤치에서 선수들을 응원하고 위 감독을 도왔다. 그녀의 왼쪽 가슴에 매달린 검은 근조리본은 반드시 이날 우승을 따내 영전에 바치겠다는 고인과의 약속의 징표처럼 보였다.
용인=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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