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부터 분홍색이다.
IBK기업은행의 외국인선수 알레시아 리귤릭(26)의 별명은 '우크라이나 공주'다. 앞에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고집센'이다. 한국 코트를 밟기 전 이탈리아와 터키 등 유럽리그에서 활약했다. 나름 자존심이 강했다. 그러다보니 '희생'을 알기까지 3년이나 걸렸다.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유럽은 팀 훈련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 하루씩 나눠가면서 공격과 수비 훈련을 한단다. 대신 철저한 개인훈련과 자기관리가 강조된다. 새침한 성격은 훈련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훈련 중 꾀를 부리는 것이 포착된다. 경기 중 자신에게 리시브가 불안하게 올라올 경우 인상을 찡그려 버린다. 선수들의 분위기는 곧바로 추락한다. 25일 GS칼텍스와의 2012~2013시즌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2차전이 열리기 전 이정철 기업은행 감독은 "지난시즌에는 알레시아를 혼만냈다. 잘못을 지적해도 굽히지 않더라. 어찌나 곱게 자랐던지 어머니도 어쩌지 못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올시즌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알레시아는 자신을 '소녀가장'이라고 표현한다. 이 감독은 "농구 감독이던 아버지와 농구 선수이던 오빠가 코트르 떠났다고 하더라. 이제 돈을 벌 사람은 자신 뿐이라고 열심히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이 감독은 경기력을 떠나 알레시아를 팀에 더 녹이려고 노력했다. 동료들을 집에 초대해 저녁식사 시간을 가지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알레시아는 곧바로 시즌 중 고참 3명을 불러 고국 음식을 대접했다.
이번 시즌 심리적 안정을 되찾은 것도 알레시아가 춤을 출 수 있었던 비결이다.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와 딸의 외로움을 달랬다.
알레시아는 올시즌 공격 2개 부문(공격종합, 후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챔피언결정전은 알레시아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기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던 무대였다. 이 감독은 "'욕심'을 내라고 주문했다. 또 '별명'인 공주답게 환하게 웃어보라고 했다"며 알레시아의 기(氣) 살리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감독의 당근은 알레시아를 춤추게 했다. 플레이는 '명불허전'이었다. 알레시아는 이날 31득점을 폭발시켰다. 고비마다 강력한 스파이크를 코트에 꽂아 넣었다. 공격성공률은 44.61%였다. 전위에선 블로킹도 적극적이었다. 유효 블로킹으로 동료들의 수비를 도왔다. 무엇보다 후위에선 멋진 디그로 팀 분위기를 살리는데 힘을 보탰다.
알레시아의 맹활약에 힘입어 기업은행은 GS칼텍스를 세트스코어 3대1(25-22, 25-23, 21-25, 25-20)로 꺾었다. 5전3선승제로 펼쳐지는 챔프전에서 2연승을 달성했다. 기업은행은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창단 2년 만에 V-리그 정상에 오르게 된다.
화성=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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